2015. 2. 22. 06:39ㆍ도시와 건축/이야기
건축의 형태는 언제나 중요하다. 나에게는 더 이상 건축의 형태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처음 느끼는 것은 건축물의 형태 혹은 그 건축물의 형태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너무나 중요한 인지 요소이다. 좀 더 섬세한 사람들은 건축재료 정도나 건축물 이용할 때 편한지 불편한지가 더 생각해볼 만한 요소일 것이다. 목적지 1,2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가는 것이 베를린 와서 생긴 한 가지 습관이다. 환승하느니 차라리 걸어가는 편이 더 즐거워서 그런데, 고양이 식품을 사러가는 길에 마주치는 거대한 운동시설이 있다. 가끔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섬뜩섬뜩함을 느낀다. 아마 Nürnberg라는 도시를 경험해봤던 이유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한 때 건축계에서는 김수근의 비윤리적인 설계안인 남영동 대공분실로 인한 논란이 아주 잠시있었다. 물론 그 임팩트는 적지 않아서, 이제는 김수근이라는 건축가를 이야기할 때면 그 논란이 빠지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뭐 그렇지만, 건축계의 자성이라던가 건축가의 윤리에 대한 토론이라던가 하는 것은 내가 아는 바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건축이라는 문화 그 자체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사회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애초에 건축가가 지켜야하는 윤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직업군들의 상황도 비슷할 것이다. 물론 선서 등을 하는 소수의 특수 직업군인 의사 혹은 판사처럼 그 직업의 기본적인 윤리 혹은 정의가 있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고 알바를 하면서 어떠한 직업적 윤리관을 가져야 하는지 교육을 받거나, 고민을 하거나, 생각을 해보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파편화된 분업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일이 어떤 비윤리적 일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윤리적인 기업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내부 고발자는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기 어려운 고위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정의'라는 키워드로 수업을 하고 결국 책까지 냈던 Michael Sandel 교수도 그런 일상적인 선택지 앞에 선 인간의 양심적 딜레마를 조명하며 한국사회의 일순간적인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너무 일순간적으로 강하게 분 유행이라서 돌이켜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저가 입찰 경쟁을 하고, 야근비 없는 야근을 강요하고,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곳에서 건축의 제대로 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실 사회에서 건물을 지을 때 건축가는 그저 기능인에 불과하다. (2014/07/06 - [Nürnberg/도시건축] - 건축가의 윤리 그리고 나치 전당 대회장/ Reichsparteitagsgelände) 도시설계가도 마찬가지이다. 도시를 설계하는 것 그리고 건축을 설계하는 것에 있어서 그들이 배운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지 아니면 그냥 짓게 놔둘지는 개인의 양심에 맡긴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앞서, 정말 정의롭고 윤리적인 도시계획이라고 진행된 사업도 엄청나게 많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업적 윤리는 개인의 양심에 기대는 세상이고, 그 양심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는 돈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곤 한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아무튼 이렇게 도시건축가의 윤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계속 고민을 해보고 싶다.
* Nürnberg에 관련된 글을 쓸 때마다 자꾸 이런 글만 쓰게되서 내가 사랑하는 도시 Nürnberg에게 미안함 마음이 든다. 물론 이번 글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한건 아니지만, 이 글의 모티브가 Nürnberg와 Berlin의 건축물들 외형으로부터 나왔다. 그렇다고 베를린의 저 건축물이 의도적으로 나치의 건축물을 따라 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명시한다. 근본적으로 아예 다른 건축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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