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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회 이슈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고마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지난해 베를린 CSD(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퍼레이드 공식 문구는 "고마울 것이 하나도 없다(DANKE FÜR NIX)"였다. 베를린은 전세계적으로 성별, 성정체, 성지향의 다양성에 대한 열린 태도는 말할 것도 없는 진보적인 도시임에도, 1년전이었던 2015년 CSD 퍼레이드 당시 요구했던 내용이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위 문구였다.

이뤄지지 않은 요구는 동성혼, 누구나 입양 가능한 제도, 동성애 차별법(§175)으로 유죄판결 받은 사람 복권 등의 치명적 차별이었다. 물론 이 내용들에 대한 요구는 단순히 지난해 퍼레이드 때만이 아니라, 오래동안 계속 요구하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베를린은 LGBTQ+와 그 외의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그나마 살 만한 도시다. 방금 쓴것처럼 다양성에 열린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개방적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얼마전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항상 떠오르는 인권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후보가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소수자 혐오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희생 끝에 이제 겨우 한두명 자신의 의지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제는 죽기 싫어서 자신의 존재가 말살 당하기 싫어서 커밍아웃을 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독일 법무부장관이 베를린 동성애자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찾아 과거 형법 175조, 일명 소도미법으로 징역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하이코 마스 법무부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형법 175조 피해자들의 범죄기록삭제와 사면, 사과를 추진해왔다."

2017년 드디어 그 요구 중 하나가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에, 사회에 대놓고 "아무것도 고맙지 않다고" 수년간 수십년간 소리치고, 난리를 치고, 시위를 하고, 축제를 열고 한 뒤 이렇게 사과 받아내고, 변화를 이끌어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들이 정말 과도할 정도로 예의바르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의 살해당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건너편에는 나치에 의해 박해당한 동성애자를 위한 기념비(Denkmal für die im Nationalsozialismus verfolgten Homosexuellen)가 있다. 베를린 중심지에는 나치시절 박해당하고 살해당한 수많은 소수자들을 기리는 수많은 크고 작은 기념비를 의도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나치 시절 각종 소수자들이 핍박 받고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엇이 문제였는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그리고 사회를 돌아봐야한다.

"인권에 타협은 없다 Human rights are inalienable"는 인권 개념을 처음 명문화한 UN 인권헌장 제 1조의 정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타협은 없다'는 말은 인권헌장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인권에 다음은 없고, 인권을 차등적으로 적용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사람의 권리니까. 거기에 선을 긋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인권이 아니라 특권이 된다."

대한민국의 소수자들이 지금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접해달라는 것이다.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차별방지법을 제정하고 인권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특권을 혹은 기득권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안지켜지는 기본권을 인권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뤄왔다고 앞으로도 미뤄도 되는 것이 아니고, 그걸 지키게 된다고 해서 고마워할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