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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사회 이슈

#metoo, #withyou 그리고 #건축계_내_성폭력

대중서이긴 해도 페미니즘 서적도 적지 않게 읽었고, 관련 기사도 많이 읽고 그래서 가끔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주제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 주제를 명확히 고백하는 첫번째 글을 쓴다.



1. 대학생 때 친했던 여자인 친구들의 이야기는 SNS에 몇번씩 썼었는데, 현재 이 티스토리 블로그엔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검열하여 글을 쓰고 있어서 한번도 쓰지 않은 내용의 글인 것 같다. 어느새 꽤 오래전 일이 되어버려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 중 한가지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비타민 워터를 좋아했다. 당시 소위 "된장녀"의 상징이었던 그것. 나는 비타민 워터를 박스채로 사다가 대학 설계실에서 마셨다. 그리고 나와 친한 여성인 친구 역시 비타민 워터를 좋아해서 서로 맛을 바꿔먹기도 하고, 그것이 때론 스몰토크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남성이었던 나는 비타민 워터를 마시는 "된장남"이라는 비난이나 뒷담화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인 그 친구에겐 항상 뒷담화가 들끓었었다. 그 때만 해도 여혐은 전혀 몰랐던 때였고, 그냥 잘난 친구에 대한 괜한 질투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다. (실제로 아주 멋진 사람이었다.)



2.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간건축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냥 욕해도 누가 뭐라고 안할 정도로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비난의 이유를 여성임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논리적이지 않은 상대는 그냥 무시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물론, 애초에 남녀를 떠나서 손꼽을 만큼의 사람을 제외하곤 회사 사람들 대부분을 싫어했다.

3. 회사에서 마지막 프로젝트(일줄은 몰랐지만 마지막이 된)를 할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야근을 하다가 문득 동기네 부서에 갔더니, 사장이 회식에 나오라 했다는 푸념을 나에게 하였다. 나는 해맑게 "그냥 나가지 마!"라고 이야기했다. 동기는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얘가 뭘 모르네.'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얘는 고작 회식 빠져나올 용기가 없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에겐 이런 하느니만 못한 무지한 답변을 했던 것이 너무 미안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알게된 것은 동기네 본부장은 회식때 여자 직원을 부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다녀온 이후 즈음부턴, 우연히도 남초에서 많이 벗어난채로 그리고 여성인 친구들이 편했던 경우가 많았다. 다행이 군대도 카투사를 다녀왔고, 선후임도 대부분 젠틀한 사람들이었고, 무엇보다 남초 사회의 문화에 휘몰리지 않을만큼 개인의 자유가 주어진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된 이후 많은 시간을 보냈던 교회 청년부와 유치부, 초등부에선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남성들은 잡무를 맡는 것이 당연했었다. 회사에서도 여남 비율이 유사했던 부서에 속해 있었고, 회식도 1년에 한번 할까 말까한 부서였다. 게다가 동료나 부하직원을 그렇게 다루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마치 여혐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남녀평등이 실천된 사회인 것처럼 생각한 것이나 다름없는 내 무지함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4. (2018년 3월 5일 추가) 얼마전 친구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떠오른 사실이다. 이건 큰 권력을 지닌 본부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 동기들은, 동기라는 이유로 남자 동기들의 허락받지 않은 스킨쉽과 성희롱 등에 시달려야했다. 내 몸을 누가 만지는 것을 싫어해서 좀 이상해보였지만, '동기니까.'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고, 어느새 그런 모습이 익숙하게 되었다. 이건 동기니까, 후배니까, 선배니까, 친구니까 등으로 변하며 상대에게 허락받지 않은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력의 빌미가 되었다.

1,2,3,4의 상황 모두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고, 일상의 성차별을 넘어서 남한 사회의 성차별적 사회의 구조를 공고히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방관과 나의 무지함으로 스스로 그런 시스템의 방관자로서 이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강화시키는데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건축계_내_성폭력 그리고 #withyou

현재 예술문화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 그리고 #ㅇㅇ계_내_성폭력 이 건축계로 넘어와 누군가 용기를 낼 수 있길 바라지만, 지금 당장 용기를 내지 않는다고 혹은 영원히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더라도,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당신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잘못을 한 사람 그리고 용감하지 않은 사람은 나같이 그 문제를 보고도 방관했던 그리고 (잠재적) 가해자인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베를린에서 살며, 남한에서의 #ㅇㅇ계_내_성폭력 그리고 어쩌면 생겨날 #건축계_내_성폭력 운동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순 없지만, 작은 변화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온라인 상으로 그리고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이에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선 일상적 성차별과 성폭력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실천적 삶을 이어나가면서, 방관자로 혹은 가해자로 행동하지 않도록 더욱 더 공부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고민할 것이다. 또한, 실천과 연대의 의미로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않는 독일어권의 주요 페미니즘 운동 소식을 기회가 될 때마다 전달하겠다.

마지막으로 홀로 마음 편히 무균실 속 방관자로 살아와서, 건축계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수많은 성차별/성폭력으로 피해 입은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건축계 미투 아카이브

공간사회가 김인순씨의 미투 글: https://blog.naver.com/kisbb/221211904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