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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치퍼필드: 베를린은 어떻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위대한 도시가 되었는가

도시와 건축/베를린 이야기

by * 도시관찰자 2014. 12. 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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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공모전 주최자 등에 의해) 주어진 뻔한 도시의 맥락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여느 건축가와 다르게, 베를린에서 꽤나 굵직굵직한 작업을 하고 있는 David Chipperfield의 베를린에 관한 글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 어떤 해외의 건축가가 자신의 도시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도시에 대해 이처럼 심도 있고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냥 작품이 멋져서 혹은 작품이 재미있어 보여서 좋아할 수 있는 건축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지식과 도시에 대한 이해 때문에라도 존경할 만한 건축가이다.

*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영어 기사를 굳이 번역할 필요는 없지만, 주옥같은 문장들과 생각이 많아서 겸사겸사 의역을 하였다. 원문 자체는 얼마 전 베를린 Neue Nationalgalerie에서 있었던 David chipperfield의 연설 내용 요약본이다. 사진은 상황과 맞겠다 싶은 사진들.

** 원문 주소 :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4/nov/11/how-berlin-became-great-city-complexity

 

How Berlin became a great city like no other/ 베를린은 어떻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위대한 도시가 되었는가

Since the fall of the Wall, Berlin has managed something truly admirable: to be defined not by wealth but by its very complexity

장벽의 붕괴 이후로 베를린은 정말 감탄할만하게 해왔다. 부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매우 복잡함으로 말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5년 뒤인 지금도 베를린은 불만족스러운 도시의 형태를 두고 몸부림치고 있다. 빈 공간들, 복제된 공간들 그리고 세련되지 않은 자연까지 말이다. 베를린은 언제나 유동적인 도시였고, 역사적이고 반역사적인 경향에 의해 매우 복잡해져서 도시의 구조 또한 도시를 재정렬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 도시 재개발이라던가 대규모 개발 사업은 어김없이 베를린 시민들의 시위와 저항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든 잠재우려고 시도된 것이 Behutsame Stadterneuerung(조심스러운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를 가졌던 IBA '8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이유로 인해서 베를린은 다시금 위대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베를리너 스스로보다 더 놀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에게는 베를린에서 산다는 것이 유럽의 정치적인 수도에서 사는지 혹은 클럽과 새로운 브랜드로 가득한 매력적인 히피의 마을에서 사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제대로 된 국제공항 없이 오래된 테겔 공항이 아직도 운영하고 있다는 것*에 행복해야 하는지 혹은 몹시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이 정말로 베를린 성을 다시 지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들은 Frank Gehry가 Alexander Platz에 꼬여있는 형태의 타워를 짓는 것이 베를린의 밝고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순수함의 시대가 종말 하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 원래 2011년 개장 예정이었던 국제공항이 4번의 개장 연기를 거쳐 2015년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는 언제 개장하게 될지 예상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베를리너는 그들이 아름다운 도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도시가 계속 아름답지 않아야 하고, 아름답지 않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들은 다른 수많은 도시에서는 이미 실종된 (도시에 대한) 참여 의식과 심지어는 주인 의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베를린이 매력적인 이유이다. 동질화, 상업화뿐만 아니라 더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도시의 특성이 대체된 다른 도시들에는 없는 특성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섹시'할 뿐만 아니라 '정치 참여적이면서도 생기 있고'. 지저분하고 모순되지만 유기적인 특성 말이다.

 

London, Doha, Shanghai는 투자의 중심지가 되고 개발을 환영하면서 부와 도시 이미지를 얻었지만, 정작 시민과 관련된 내용은 빈약하다. 이와 반대로 베를린은 사색적이고 의심스러운 도시처럼 보인다. 베를린의 시민들은 국제적인 이미지와 개인 투자라는 명백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명령에 감명받지 않는다.

왜 베를린은 다를까? 도시의 분단은 도시의 인프라를 새로 재조직해야 하는 서베를린을 만들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프라를 재조직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절차였다. 원래 있던 것을 잃어버린 것이니까 말이다. 수많은 문화적 그리고 상징적 주요 시설들은 동 베를린에 있었다. 베를린은 도시 전체로부터 절반을 끄집어내기 위해 다시 한번 도시의 질서를 재조직해야 했다.

이 기회는 그 당시의 다른 나라의 건축가, 계획가 그리고 정치가에 없었던 것이었다.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행정적 구조가 새롭게 지어져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동 베를린에 있는 시설들을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시설들이 필요했다. 동시에 새로운 도시의 형태적 지향점은 어긋나고 고립된 서 베를린을 향해 주어졌다.

 

전후 다른 유럽의 도시들이 재건될 동안 베를린은 도시의 분리와 통일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재건이 늦춰졌다. 그래서 베를린에는 여전히 물리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빈 공간들이 존재한다. 그런 차이와 낯선 물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다른 도시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정리되는 풍부한 사회적 중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 동, 서독의 분단을 의미. 물리적으로 단절되어있었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었고, 사회 체제 역시 큰 차이가 존재했고, 경제적 격차도 존재했었다. 즉,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두 도시, 문화, 사람들이 합쳐진 것이다.

이렇게 베를린은 그 자신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혹은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연속되는 과정에 계속 관여할 수도 있었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 과정은 명백히 이 분단과 트라우마가 남긴 물리적으로 고장 난 도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오히려 매력적이 되었고, 삶이 가득해지고, 다른 도시의 시기를 일으켰다. 베를린의 아름다움 때문도 그리고 부유함 때문도 아닌 단지 이 곳의 활력 때문이었다.

 

도시는 사회의 생각을 만들려는 인간의 허술한 시도들을 물리적인 형태로 기록한다. 도시들은 우리의 비전과 우리의 실수의 물리적 기록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일에 서툴렀다. 그리고 그것은 서투른 과정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일부는 의사결정 시스템 때문이고, 또 일부는 투자 경향과 시민들의 불충분한 기대 사이의 부조화 때문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세계를 여행할 때 우리는 이런 면에서 더 서툴러지고 있음을 본다. 우리 도시들의 형태는 우리 사회의 생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투자가 스스로의 필요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도시를 만들며 세계 경제의 순간을 즐기고 있다.

 

현재 우리는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외형에 의한 판단에 민감해지고 있다. 건축은 이러한 소비의 세계로 점점 더 이동해가고 있다. 새로운 건물들은 건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중시한다기보다 어떻게 보이는지를 중시한다.

베를린은 외형이 다가 아닌 곳이자,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곳이다. 또한 역사의 거대한 파도가 엄청난 피해를 입힌 곳이다. 우리는 베를린이 1989년 이래로 성취한 것들을 존경해야 한다. 이 시대에 베를린은 스스로 기대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른 도시들처럼 부에 의해 정의되거나 산업에 의해서 정의되거나 혹은 상업에 의해 정의되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놀랍게도 베를린 스스로가 가진 매력적인 복잡성과 모순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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