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8. 08:00ㆍ도시와 건축/이야기
아이엠 페이(I.M. Pei) 혹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를 알게 된 것은 학부시절 다녀왔던 중국 답사 때였다. 도시를 공부하고 있었지만, 건축도 좋아했고, 몇몇 서양의 현대 건축가를 열심히 파고 있었던 당시 I.M. Pei의 쑤저우 박물관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었던 충격에 가까운 건축이었다.
간결하고 반복된 형태의 박물관은 지루함이 없었고, 동시에 지역의 전통 건축(+새로 지어진 I.M. Pei의 쑤저우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옛 쑤저우 박물관)과 시각적으로/스타일상 충분히 유사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적이었고, 그를 통해 자신이 다른 용도의 건물(박물관) 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당시 이 건축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 교수님은 I.M. Pei가 수십 년의 노력 끝에 결국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쑤저우 박물관은 2006년 완공된 곳이었고,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2010년이었다. 같은 시기에 지어졌던 룩셈부르크의 무담 현대미술관 그리고 몇 년 뒤 완공된 도하의 이슬람 예술박물관은 그의 (박물관 건축) 언어가 명확히 보이면서, 동시에 지역성을 어느 정도 품고 있지만, 쑤저우 박물관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문화적 정체성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이후 유럽 여행에서 I.M. Pei의 건축은 꼭 찾아가야 할 리스트에 올랐다. 가장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곳은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역사박물관(별채)이었다. 새로운 전시실 건축물(별채)을 설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접한 기존의 병참부(Zeughaus) 건물을 연결하는 동선과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쑤저우 박물관보다 3년 앞서 완공된 곳이다.
통일 직후에 진행된 사업이었기 때문에, 진행 과정이 흥미로운 건축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독일 역사박물관은 건물 두 개 사이에 끼여있는 형태다. 게다가 주변에는 온갖 역사적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토론과 함께, 당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직접 I.M. Pei에게 설계 요청을 하게 되었다. I.M. Pei는 당시 이미 고령이었고, 프로젝트를 제한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공모전 등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정상적인 절차로 인한 비판이 있었고, 또한, 앞서 언급한 대상지 맥락으로 인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Pei가 설계를 제출하자마자, 그 반대와 우려하던 여론은 잠잠 해졌다고 한다. 현 베를린 시장은 미하엘 뮬러도 페이의 죽음을 기리며, 베를린 독일 역사박물관을 "그의 도시 경관 속의 보석"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I.M. Pei를 세계적으로 알렸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이름을 영원히 알릴 건축물은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출입구 연결동이 아닐까 싶다.
룩셈부르크에서도 그의 건축을 만났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쑤저우 박물관 그리고 그전에 지어진 루브르 박물관에 비해서는 투박했지만, 그의 언어가 어느 정도 보였다. 이 박물관 역시 언급했던 곳처럼 기존의 건축물(무담 현대미술관의 경우는 18세기에 지어진 요새의 잔해 위에 세워졌다.)과 대비되며, 놀랍게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완공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은 1997년 지어진 일본 시가현의 미호 박물관은 그야말로 우아함의 표본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본 그의 건축은 미국 내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의 이름을 (루브르 피라미드 앞서) 세계 널리 알렸던 홍콩의 중국은행 타워였다. 1989년에 지어진 고층 빌딩인데, 대지의 (지형) 상황에 맞춰 만들어진 형태와 홍콩 지역의 기후적 특성을 견뎌내기 위한 구조가 결합하여, 독특한 모습의 타워를 만들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홍콩의 근현대 고층 건축물군 사이에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이것은 다른 건축물이라고 말하는 듯 건물의 큰 구조를 따라 설치되어있는 야간 조명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과거와 현대의 건축 사이에 자신 건축적 언어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기존의 맥락에 스며들 수 있는 건축을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 하면 언제나 I.M. Pei가 생각날 것 같다.
Ruhe in Frie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