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학의 문제, Urban Engineering

2015. 2. 7. 06:51도시와 건축/이야기

* 예전 블로그에 썼었던 글인데, 그대로 다시 올린다

 

Humankind's greatest creation has always been its cities. - The City, Joel Kotkin, p.xx

나는 도시공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이 도시공학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든 적이 없었고, 본격적으로 설계를 시작하는 대학교 2학년 이후로는 그 도시공학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꺼내봤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용어를 쓰는 것 자체도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도시'를 공부했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게 나의 학문적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의무로 들어야만 했던 몇몇 수업들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도시설계 스튜디오라는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수업들을 선택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도시 기반 시설 등을 다루는 Civil Engineering(토목 공학), Transportation(교통 공학), Urban System(도시 시스템 공학) 같은 전공에는 Engineering을 쓰지만 Urban Engineering은 조금은 생소한 학과명이다. 실질적으로 이 Urban Engineering이란 이름이 고스란히 학과명으로 사용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검색을 해보면 도쿄에서 하나 정도 발견된다. 그 외에는 위에 언급된 것처럼 다른 공학과 결합되어 쓰이는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도시에 관련된 학과는 도시공학이 가장 학과명으로 많이 쓰이고, 도시계획이 그 다음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도시 행정 등의 도시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다른 학과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두 학과 모두 커리큘럼 상에서 큰 차이 없는 공부를 하게 된다. 도시 공학의 발생은 (우리나라 대부분이 그렇듯) 정확히 기록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알지만, 교수님들이나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공학 육성을 하던 정부 정책과 공학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의 강점 그리고 공과대학에 편성이 됨으로 인해서 생기게 될 (예산 등의) 이익을 한껏 반영한 행정적 처사라고 요약된다. 웃긴 점은, 내가 졸업한 학교의 영문 졸업장과 영문 성적표에는 대놓고 Urban Planning이라고 학위가 표기된다는 점이다. 즉,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학과명이 Urban Engineering이고, 그렇기에 해외 유학이나 해외 취직을 위해서라도 이 도시공학이라는 명칭은 Urban Planning으로 변경되곤 하는 것이다.  

 

 

건축과 학생들도 그렇지만, 도시공학과 학생들 역시 혼란스럽다. 소속은 공대이지만, 공대 같지 않은 수업만 배우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학까지 와서 왜 의무로 과학과 수학을 배워야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1학년 기초적인 과학 수업과 공업 수학을 제외하고는 내가 공대생인지, 미대생인지, 사회대생인지, 인문대생, 법대생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만한 커리큘럼을 자랑 한다. 1학년 때는 커리큘럼상 그리고 학과상 실질적으로 필요없는 수업만 듣기 때문에 2,3,4학년 동안 즉, 6학기 동안 이 수많은 학문을 배워야한다. 즉, 애매모호하다. 엄청난 개인 시간을 투자해야지만, 그나마 어디가서 다른 사람에게 이 전공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졸업할 수 있다. 적당히 좋은 학점에 학위만을 바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학교를 다니다보면, 졸업하고 나서는 내 전공이 뭔가 싶고 전공에 대해 얼버무리며 말끝 흐리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아니면 1학년 때 들었던 교수나 남의 말을 고스란히 활용하거나 말이다.

이 사회에서는 제대로 도시를 공부하려면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 방학에도 도시 설계 수업이 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다른 이론 수업들과 병행하기 위해서 학기 중에는 설계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야한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설계는 고작 4학점에 불과하다. 비슷한 고통과 비중을 지닌 건축설계의 학점이 6학점인 것에 비해 그리고 독일에서 Staetebau Projekt가 12ECTS(한국식으로 약 8학점)인데 비해 그 가치는 평가절하되어 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짜피 숫자놀음인 사회에서 보행자니 녹지축이니 바람길이니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멍청하고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왜 그럴까?

 

 

* What if? Cartoon by urbanist and illustrator Dhiru Thadan. 

https://imaginingcities.tumblr.com/post/70379473976/what-if-cartoon-by-urbanist-and-illustrator-dhiru

 

아무튼 잘 다녔고, 잘 졸업했던 이 학과명이 문득 지금에 와서는 나를 자극한다. 이 사회가 도시를 팔아버렸다는 느낌이 문득 강하게 든다. 도시를 계획해야하고 설계해야하는데, 도시를 공학에 팔아넘겼다. 그 결과가 지금 서울의 모습인 것이고, 도시공학과 교수들은 앞서서 부동산 시장을 걱정해온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까지 나서서 부동산 하락을 걱정한다. 왜냐하면 숫자놀이에서 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학이 그리고 부동산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만들고, 가꾸어나가는 방법은 다양하고, 공학도 부동산도 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학문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계획과 설계의 가치는 설 자리를 잃었고, 공학적이고 수치적인 가치만으로 도시를 평가해왔다. 우리는 인류 최고의 창조물을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돈에게 팔아버렸다. 돈 이상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돈이 최고의 가치인줄로만 알고 기업에게 그리고 개인에게 도시를 팔아왔다. 그러니 숫자놀음에 상관도 없는 것에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리석어 보이고 순진해보이니 측은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설국 열차에서 뒷칸에 살던 사람들은 열차 앞칸을 차지해야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냄쿵민수 같은 전문가와 지식인은 아예 열차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자는 이야기를 그리고 행동을 한다. 그런 전문가를 우리 사회는 의도적으로 양성하지 않았다. 숫자 놀음에 중독시키고, 당연시 여기게 만들고, 잊혀진 가치를 찾고 외치는 이들에게는 개인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심지어 희생이 억울할 정도로 보잘것 없이 대우한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이런 교육 제도 속에서 감히 보행자 버튼이 아닌 운전자 버튼을 상상하고 주장할 수 있는가? 보행자의 권리가 신장되고 있다고 하지만, 보행자 버튼조차 생소한 우리 도시의 모든 도로와 거리에서 차량이 1순위가 아닌 보행자가 1순위가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뒤에서 수십대의 차가 빵빵 거려도 우리는 당당히 도로에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다닐 수 있는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아니, 아예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것임에도, 문제에 대한 인식은 커녕 당연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우리 사회다. 

이제 우리 도시에게 필요한 것은 더이상 도시공학이 아니다.

숫자에 중독된 아픈 도시를 치료해줄 도시계획과 도시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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