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8. 04:28ㆍ도시와 건축/이야기
지난 학기부터 Bremen과 큰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 도시설계 프로젝트 대상지가 브레멘이었고, 또한 방학 동안 다녀온 워크숍도 브레멘에서 우연히 진행되었다. 겸사겸사 브레멘이라는 도시의 재미 난 매력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앞으로 간혹 브레멘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쓰고자 한다.
브레멘에 대한 첫 사진과 글은 벙커 발렌틴(Bunker Valentin)이라는 곳에 관한 지극히 평범한 글이다. 그동안 써온 도시, 건축적인 맥락의 글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도 인상이 깊었던 곳이고, 이 곳을 추천해준 모든 사람이 '오싹한, 분위기가 안 좋은, 으스스한' 등의 표현을 아끼지 않고 표현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독일 나치가 U-Boot XXI(독일어론 우부트이지만 영어가 더 익숙한 단어라 유보트로 표기)를 생산하고 북해로 발진(?)시키려던 장소다. 실제로는 하나도 생산되지도 못한 불운했던 불우한 장소이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거대하지만, 독일의 도시 내에서 사실 30분 이상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일이 별로 없는데, 브레멘은 거의 선형 도시와 마찬가지로 생긴 도시라 30분 이상의 대중교통 이동이 꽤나 잦다. 벙커 발렌틴은 도심에서 약 1시간 넘게 걸리는 평범한 동네인 Bremen-Farge라는 곳에 위치해있다. 주변을 보면 정말 그냥 평범한 옛날 마을 같다. 특히 그 느낌을 확신시켜주는 것은 초가집 마냥 전통방식을 따라 짓고 관리하는 듯한 지붕을 지닌 집이 아주 높은 비율로 있다는 점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벙커 발렌틴 간판을 보고 걸어 들어가면, 멀리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보인다. 유보트의 생산지이자 그 시설을 지키기 위한 벙커로 지어졌기 때문에 거대하고 묵직한 장소다.
이 곳은 현재 투어를 통해서만 내부를 방문할 수 있다. 이 투어도 얼마 전에 다시 재개되기 시작했는데, 도시의 외곽 중 외곽에 위치한 곳이라 거의 잊힌 장소였었는데, 그 잘못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Denkort(의역하자면 기억의 장소 정도)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그를 바탕으로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다. 일요일에만 투어가 있고, 투어 예약은 거의 1달치가 밀려있다.
물론 나도 브레멘에 가서야 알게 된 장소라 예약을 못했었고, 외부만 돌아보려고 갔다. 남는 시간이랑 일치하기도 하고, 혹시나 싶어 투어 날 맞춰서 가긴 했다. 우연히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 중 하노버에서 온 아저씨가, '나도 예약 안 했는데 그냥 기다리고 있다'며 같이 말해보자고 했고, 착한(?) 가이드 허락하에 함께 투어를 참여했다. 투어는 고작 2유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데, 걸음이 멈추는 순간은 계속 뭔가를 설명해줬다. 투어는 독일어만 있어서, 영어밖에 못하는 아주머니는 1시간 반 동안 가이드가 나눠준 종이 한 장만 바라보았다는.
벙커는 2곳으로 나뉘어있다. 건설 단계가 2단계로 나누어졌기 때문이고, 현재도 그 두 장소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쪽에 위치한 반 2차 건설 구역은 지금까지도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서 잘 관리되어있다. 사실 그냥 뭐 큰 창고 같았다. 위 사진이 그 모습이고, 최근까지 독일군의 창고 등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BImA라는 (거지 같은) 독일 연방정부 부동산 관리 회사가 이 장소의 일부를 사무실로 개조해서 임대를 하고 있다. 구도심에서 1시간 넘게 떨어진 외지에다가.
그리고 현재 접근이 불가능한, 나머지 절반인 1차 건설 구역은 옛 모습을 거의 고스란히 남겨두고 있다. 사진의 좌측 상단에 빛이 비치는 장소는 연합군(영국)의 폭격을 받아 부서진 위치로, 거의 그 상태 그대로 남아있다. 나치군의 아주 중요한 유보트 생산지이자 동시에 그걸 지키기 위한 벙커였기에, 최소 4.5m에서 최대 7m 두께의 콘크리트 지붕이 지지하고 있었다. 연합군의 총 18개의 특별한 폭탄과 12개의 평범한(?) 폭탄 중 2개(재미나게도 이름이 Grand Slam)가 명중하며 두 개의 큰 구멍이 났는데, 그중 하나가 윗 사진의 구멍이다.
실제 이 정도의 느낌은 아니지만, 거대한 텅 빈 공간은 꽤나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HDR로 찍으면 멋지다. (인터넷에서 Bunker Valentin 검색해서 나오는 멋진 내부 사진은 다 HDR 일듯)
유보트가 출항을 하는 장소
브레멘 전역에서 만들어진 잠수함 부품이 조립되어 출항해야 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바다에 가까운 강가에 위치해있고, 풍경이 꽤나 좋다. 건물에 보면 살포시 하늘색이 보이는데, 이건 예전 독일군이 사용할 당시, 누군가 했던 (벌써 투어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반전 관련 거대한 그라피티의 흔적이라고 한다.
앞의 사람들과 개를 통해, 건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 대략 30~33m의 높이다. 높지는 않지만 긴축으로 419m. 넓이는 69m ~97m에 달하는 묵직하게 땅을 누르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벙커가 보이는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던 캠핑카들. 근데 그럴 만큼 주변 풍경도 여유롭고 좋다.
주변이 이렇다(1)
주변이 이렇다(2)
개인적으로는 투어 시간 전후로 여유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기를 권장한다. 투어보다 1시간 일찍 가서 주변을 둘러보며, 단 하나의 건물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주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폭격으로부터 벙커를 숨기기 위해, 사진에 보이는 나무를 브레멘 시민공원에서 통째로 옮겨다 심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벙커 주변에서는 벙커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나무와 식물이 빽빽하게 자라 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뻔히 보인다.
이 건물 하나만으로 유보트를 만들어내고, 연합군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누군가 요술 망치로 뚝딱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지도 왼쪽 상단에 보이는 회색 사각형이 발렌틴 벙커다. 그리고 지도 중앙 상단과 전역에 펼쳐져있는 붉은색 표시는 이 벙커를 짓기 위해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들이 묶었던 막사이다. 또한 주황색 표시는 이 벙커를 운영하기 위한 기름 등을 저장해놓던 저장소를 의미한다. 참고로 보라색 선은 브레멘과 니더작센 주의 경계선인데, 이 곳이 얼마나 브레멘 시의 끝에 위치해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약 10,000명의 사람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투어 내내 이 내용은 계속해서 강조되었다. 때로는 사진을 통해, 때로는 그곳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그리고 투어의 시작과 끝을 내는 장소에 위치한 강제 동원 노동자 기념비를 통해서 말이다. 참고로 기념비는 수많은 콘크리트 작업을 한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형태로 사각형 콘크리트 기둥에 짓눌리는 형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참조: http://www.denkort-bunker-valentin.de
독일의 또 다른 대형 나치 건물
도시건축가의 윤리 그리고 제플린 필드/ Zeppelinfeld und Zeppelinwi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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