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윗

008 트윗

by 도시 관찰자 2024. 2. 6.

10대 때 자주 꾼 꿈 중 하나가 바람에 둥둥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여유롭게 바람을 타고 세상을 관망하는 식의 낭만적인 꿈은 아니고, 보통 어둑어둑한 밤 배경으로 적에게서 도망을 가는 꿈이었다.

둥둥 날아다닌다고 했는데, 이 방식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지상에서 바람의 흐름을 타면 하늘로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고, 이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바람의 흐름을 따라다니는 편이었다. 그래서 바람을 못 타면 추락을 하게 되거나 바람을 잘못 타면 여기저기 원치 않는 곳으로 날아다니곤 했지만, 이 꿈을 자주 꿔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꽤 내 의지대로 바람을 탈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추격하는 무언가를 따돌리고 바람을 타고 수십 층짜리 거대한 건물의 옥상으로 옮겨가고, 거기서 바람을 타고 아래 아무것도 안보이는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정처없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다가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조바심과 함께 목표했던 곳으로 무사히 착륙하여 꿈을 이어가거나, 아예 땅으로 떨어지면서 꿈을 깨기도 했다. 바람을 타고 다니는 것은 꿈 속에서조차 꽤 짜릿한 기분을 느꼈었던 기억이 난다. 바람을 못 타서 떨어지면 소름을 느낀채로 잠을 깨기도 했고.

이 꿈들은 몇 가지 현실의 부분과 연계가 됐는데, 보통 떨어지는 꿈은 키가 클 때 자주 꾸는 꿈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이 꿈을 꾸던 시기에 20cm 넘게 크기도 했는데, 키가 다 큰 이후에도 종종 이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꿈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겠지만, 예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을 타고 다닌 것이 사회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살아가야만 했던 것에 대한 불만이 쌓이던 사춘기 시절의 내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재미난(?) 점은 그 꿈에서 친구와 가족이 함께 도망가는 것이 얼핏 기억이 나는데, 꿈 속에서조차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도 없고, 별 기억도 없는 것 보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알아서 잘 살자주의)

아무튼 처음 이 글을 쓰려던 이유는 약 10여 년간 M(고양이)와 함께 살지 않았으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는데, 글을 쓰다보니까 그냥 꿈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쓰는걸로 마무리를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생각해놓은 것이 있으니 마무리할 겸 적어보자면,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나는 보통 다양한 국가와 도시를 거쳐가면서 사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해왔다. 그렇다고 3개월, 6개월 짧게 거쳐가는 노매드의 삶을 산다기보다는 잠시 머물다 간 이웃 느낌으로 3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까지 한 도시에서 사는 식으로 말이다. 바람을 길게 타고 세상을 떠돌던 꿈 속에서의 내 상상이 2,30대 나의 삶과 어쩌면 4,50대 때의 나의 삶에도 영향을 주게 될까?

반응형

'트윗'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윗 007  (0) 2023.12.14
006 트윗  (0) 2023.11.23
트윗 005  (0) 2023.10.07
004 트윗  (0) 2023.10.05
트윗 003  (0) 202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