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의 미래

2016. 5. 10. 03:01도시와 건축/이야기

익선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회사를 다니고 나서였다. 단체 생활이 주는 수많은 피로감과 (정확히 말하자면) 무의미함이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하나의 저항으로 근무시간에는 정말 근무만 열심히 했고, 출근 시간 전, 점심시간 사이 그리고 퇴근 시간 후에 주변 도시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동쪽으로는 창덕궁과 종묘, 서쪽으로는 경복궁, 남쪽으로는 종로 3가 그리고 북쪽으로는 북촌이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한 대략적 답사 경계였다. 특히 출근 시간에 안국역에서 내려서 곧장 회사에 가는 비교적 재미없는 길을 택하기보단 종로 3가에 내려서 익선동을 거쳐서 가는 것은 꽤 좋은 출근길이었다. 경험상 이 주변은 비교적 저녁때 그리 치안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익선동은 도시적인 관점에서 선호 지역은 아니었다. 물론 재미난 동네지만, 밀도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땅에 이렇게 밀도가 낮은 한옥이라니! 물론 ㅁ자 한옥은 그 자체로는 꽤나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주거 유형이지만, 주변 지역의 고밀화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주요 도로변으로는 3~5층 내외의 주상복합 건물이나 상업 건물이 들어서 있고, 블록 내부로는 작은 골목과 1~2층의 저층 주택 혹은 한옥이 공존하는 것은 분명 나쁜 모습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런 형태로 주요 도로변으로는 고층 주상복합 혹은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고 내부에는 거리에서 보이지 않은 한옥 혹은 양옥 혹은 저층 주택촌이 형성된 곳이 서울에 적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문화적 가치가 중심이던 오세훈 시장 시기를 지나고, 좀 더 내실이 다져진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어렴풋이 시도하는 박원순 시장 시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저밀의 주거지역이 하나, 둘 인기 구역으로 변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층 주거 단지에서는 주거의 권리에 앞서 문화와 역사의 가치가 우선시 되면, 그곳의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즉, 명동, 인사동 등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에 실증 나서 사람이 사는 주거 구역에 스며든 (유행하는 상업적) 문화가 도리어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을 몰아내는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과거 문화가 번성하던 동네에서 자본에 의해 쫓겨난 혹은 이제 새롭게 꽃 피려고 하는 문화 자본에게 그저 그 문화를 안정적으로 꽃 피울 좀 더 매력적이고, 좀 더 저렴한 장소가 필요했다. 홍대, 대학로, 신촌, 명동 그리고 대학가 일대 등은 그들이 쫓겨난 곳이고, 지난 5년간 핫 한 동네였던 가로수 길, 경리단 길 등으로 애초에 자본이 부족한 이들이 가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의 부동산 가치가 형성되어있고, 그런 대안으로 아예 새롭게 무언가를 꾸려볼 만한 보급형 대체 구역이 바로 성수동, 연남동, 익선동 등지였다.

 

건폐율이 높은 유형이지만, 그래도 1층 한옥의 저밀은 세계적으로 트렌드가 되고 있는 도심 회귀 현상을 고려해봤을 때, 슬프디 슬픈 한국 건축의 현실이다. 전통 한옥이라고 할 것은 현대 도시의 밀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수준이고, 고층의 한옥을 개발하기엔 그동안 축적한 한옥 양식의 발전이 전무하다. 그 말은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 3~5층 한옥도, 철근 모듈 프레임을 통해 디자인한 3~5층 한옥도 그 어떤 한옥의 공간적 특징을 가지는 건축 유형에 대한 평가는커녕, 사람들은 대부분 외형(기와 유무)과 (나무와 흙 같은) 자재 같이 눈 앞에 보이는 내용에 대해서 한옥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새로운 한옥이 될 수도 있었던 건축 유형은 한옥 취급을 하지 않는다.

유럽 도심의 전통 주택들이 보통 낮게는 2,3층 높게는 4,5,6층의 공동 주택이라, 저층의 상업 시설과 업무 시설을 제외하고 여전히 도심에도 사람이 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이라면 정말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관광과 문화가 중심이 되는 주거 구역에서 삶의 질(소음 문제, 질 낮은 관광객들 문제 그리고 음주로 인한 범죄 등)을 유지하기 위한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층형 저밀의 주거 구역은 그 한계로 인해서 새로운 기능이 유입되면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떠나게 될 수밖에 없다. 정확히는 쫓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곳에 새롭게 온 이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런 지역 대부분은 그전에는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은 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던 저소득층의 주거 구역이었고, 동시에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채로 살아남은 구역이었다.

한옥의 다양한 건축 유형이 발달하지 못한 채 남겨져 있는 전통 근대 한옥으로는 새로운 도시화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명백하다. 사람들이 흔히 한옥이라고 알고 있는 건축 유형은 은평구의 한옥 마을 마냥 이제는 도시 외곽의 고급 주택이 아닌 이상, 도심에 짓기에는 경제성도 그리고 도시 성도 떨어지는 건축 유형이다. 남아있는 것을 지키는 것(사람이 사는 장소로서 지킨다는 의미)도 사실상 좀 더 독특한 장소와 의미 있는 장소를 찾는 문화 자본에 의해 쉽사리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당분간은 반복될 현상일 것이다.


익선동을 이야기할 때는 종로 3가에 면한 초동교회 일대의 쪽방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치안 이야기도 사실상 이 구역에서부터 문제가 가속화된다.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로부터 사실상 버림받은 이들이 밀집되어있는 곳. 지금 서울에서 뜨고 있는 동네 바로 옆에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던 이들이 살고 있다. 주변이 변화하기 시작하면, 크던 작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에 들릴 때 즈음이면, 이미 내가 알던 익선동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변한 익선동이 10년, 20년 꾸준히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거대 자본이 이 곳에 밀려와서 결국 한옥마을이라는 물리적 조건만 다른 또 다른 명동 혹은 가로수길이 만들어질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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