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7. 09:06ㆍ도시와 건축/이야기
2009년 서촌의 한 담벼락에 써있던 문구.
2009년 당시 서촌은 내 졸업설계 대상지였다. 2학기 동안 서울 4대문 지역과 서촌이라는 공간을 두고 졸업설계를 하며 적지 않은 애정을 가지게 된 구역으로, 서촌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며, 좀 더 빨리 움직이던 사람들은 서촌을 찾고, 좀 소문에 늦은 사람들은 북촌을 찾던 시기였다.최근 서촌 필운대로 지하 주차장 건설 관련한 소식을 접했다. 주차 문제는 이 지역의 오랜 문제였다. 그리고 차량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서촌과 관련한 뉴스를 간략하게 나마 살펴보았고, 몇가지 내용이 눈에 띄었다.
"서촌은 2012년 수성동 계곡 복원을 계기로 명승지로 떠오르면서, 가로 주변을 중심으로 급속한 상업화가 진행돼 왔다." 헤럴드 경제, 2016.05.26
세상에 수성독 계곡 복원이 상업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이런 수준 낮은 기사는 정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도대체 누가 수성동 계곡을 보러 서촌에 가지?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상업화의 시작은 북촌에 사람이 너무 몰리면서, (상식적으로) 궐 반대편에도 또 재미난 곳이 있지 않을가 싶어
사람들이 서촌을 찾아오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말 수성동 계곡은 하필 가장 연관이 없는 이유다.
게다가 2012년이면 이미 명승지(?)가 되고도 한참 지난 시기였다. 지난 10여년간 한옥에 살고 싶은 열풍이 각종 미디어에서 몰아치기도 했고, '조용한 마을' 혹은 '사람 사는 마을' 서촌 같은 느낌으로 다큐멘터리도 적지 않게 만들어졌고, 심지어 이미 2004년에 효자동 이발사(?) 같은 영화가 사람들의 서촌 방문을 부추겼었다. 그러니 이미 변화는 10년도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2012년은 1차 상업화의 결과물로 서촌의 모습인 것이다. 그 이후에도 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때와는 주민 구조도 적지 않게 바뀌었을 것이고, 대오 서점 같은 동네 상점이나 동네 식당은 점점 줄어들고, 이 곳을 찾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젊은 감각을 채워줄 새로운 갤러리, 상점, 카페, 식당이 많이 들어서면서, 결국 여기나 저기나 다 비슷한 서울의 흔한(?) 뜨는 동네가 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평범한 주거지였고, 이런 새로운 감각의 상점, 카페, 식당이 자생적으로 주민을 위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라면 이런 변화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단순히 관광객과 외부인으로 인해 진행된 것이라면, 이는 오랫동안 조용한 마을이었던 기존 거주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또한, 외부유입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외부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그것이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재생의 중요한 차이다. 물론 이 곳에 새로 상점을
차리거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존 주민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노력할 것임은 분명하다. 조금은 다른 곳에서의 삶과
일을 꿈꾸면서 이 서촌을 찾았을테니 말이다.
자하문로.
서촌은 서촌이라 불리는 지역 가운데를 관통하는 6차선 규모의 자하문로 그리고
2~4차선 규모의 필운대로와 연결되는 수많은 1,2차선 도로 혹은 골목들은 애초에 도로의 균형이 맞지도 않는 이 동네의 특징은 잘 보여준다. 자하문로만 놓고 본다면, 아래 사진들의 골목은 상상하기 어렵다.
1,2차선의 도로는 그리고 일반적인 상식의 차량 전용도로라기보다는 보행자와 차량이 혼재하는 일방통행의 골목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골목은 출구가 없는 Dead-end의 전형적인 골목인 경우도 있고, 실제로 차로 접근해서는 안될만한 골목도 많고, 차로 다니면 불편한 골목도 많고, 차로 오는게 어색한 골목도 많다. 이에 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이 곳의 도시 구조가 그렇기 때문이다. 차를 위한 구역은 자하문로 뿐이다. 자하문로조차 원래는 청계천의 상류가 흐르던 12~15m 폭 1의 (주변 골목과 균형이 맞는) 도로였다. 서촌의 물리적 한계는 명확하다. 지하주차장을 판다고 이 지역의 주차난은 해결 할 수 없다. 당장 수치상으로는 해결하겠지만, 결국은 더 많은 사람이 차량을 이용하고, 똑같은 좁은 도로에 더 많은 외부 차량이 몰리며 더 복잡해지는 것은 너무 눈에 선한 시나리오이다. 심지어 아래 남긴 한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이 지역 주차수급률 고작 69.7%에서 73.9%올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2009년 졸업설계 당시 만들었던 이 도면은 서촌의 도로 시스템을 보여준다. 진한 회색이 주요 도로고, 연한 회색이 2차선 가량의 도로, 갈색은 위에 언급한 여러 종류의 차로 접근이 좋지 않은 골목을 의미한다. 도로의 폭과 형태만 보더라도, 회색의 도로들과 갈색의 도로가 얼마나 불균형적인지 쉽게 알 수 이다. 물론 불균형적이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량의 흐름에 있어서는 위계가 없는 도로 시스템은 분명 불편한 요소다.
문제의 필운대로.
아무튼 필운대로 지하 주차장 사업은 2015년 전신주 지중화 사업이 이 지하 주차장 건설 논란의 배경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시가 올해 103억원을 들여 전선 지중화ㆍ보행공간 조성 등 '필운대로 역사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노상 주차장 100면 가량이 사라지게 돼 주차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경제, 2016.05.26
두번째는 이 사업은 필운대로 역사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노상 주차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필운대로 역사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은 제7차 도건위의 경복궁서측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었다. 업종 제한 그리고 높이 제한 등을 통한 과도한 상업화를 막고 경관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 내용과 지하주차장 개발안이 충돌될 이유는 없다. 애초에 지하주차장은 유럽 도심에서도 도시의 역사성을 지키고, 동시에 차량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많이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건 이미 6~80년대 전후 도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서 차량 중심의 도시 개발이라는 비전 하에 진행된 사업이 대부분이다. 특정 시기와 사건 덕택에 가능 했다는 것이다. 지금 그런 개발을 하는 도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불과 7년전만 해도 이런 개발을 향한 열망을 숨길 수 없는 동네였다. 물론 개발추진위 등을 필두로한 이들의 행동이지, 정말 전체 주민의 목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문제는 이 문화, 역사, 예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지역에 '지하 주차장 개발이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이다. 지금이야 집과 도로가 자리 잡고 있으니까 별 문제 없어보이지만, 이 지역에선 땅을 파기 시작하면 쏟아져나오는 것이 역사다. 유명한 역사 속 인물들이 살던 동네였고, 도자기와 그릇 하나만 나와도 공사는 중단 되어야 하고, 문화재 조사가 시작된다. 물론 사실상 사라진 피마골, 어설프게 문화재 껴 맞춰서 만든 DDP, 같은 종로구의 청진동 개발의 모습도 그렇고 대충 문화재 존중하는 척만 할 가능성도 크다.
500년의 역사가 있는 도시에서 그것도 궁궐의 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지하를 파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아무 문제 없이 지금 정해놓은 예산으로 깔끔하게 지하 주차장 공사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건가 싶다. 멍청하게 지하 주차장 파지 말고, 기존 노상 주차 시스템을 개선하고 보행자와 자전거 그리고 대중교통 등이 공존하는 도로를
만들면 된다. 필운대로는 적어도 도로의 물리적 규모나 기능적 용도를 놓고 봤을 때 그런 공존이 불가능한 방식는 아니다. 2015년 서울Pn의 기사에 보면 연도주차를 교차배열한다고 이미
계획했던 바도 있다.
결국은 이 문제점을 떠나 결국 지하주차장 건설 논란은 자동차를 끌고오지 않아야할 곳에 자동차를 끌고오게 유도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이다. 애초에 지하주차장을 만들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솔직히 이 지하 주차장 건설을 불러일으킨 전신주선 지중화가 그 비용에 비해 정말 엄청난 안전을 유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기도 하다. 유럽 수많은 도시에 각종 가로등, 전신주, 교통표지판, 트램 전선 등이 얽히고 섥혀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애초에 이 지역에 차를 끌고 온다는 생각과 이 지역에서 지하 개발하는데 제대로 된 사전 연구도 없이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그리고 지자체가 벌이는 일이라고는 상상을 할 수 없다. 대학 설계 수업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요 도로(필운대로, 자하문로 등)를 제외하곤 내부 골목은 거주민 주차와 통과 교통외의 행위를 강력히 금지해야한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행자들이고, 차를 끌고 오는 손님들은 대다수가 토속촌과 같은 덩치를 엄청나게 키운 소수의 음식점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는 서촌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촌이나, 명동이나, 인사동이나 4대문 안의 인기 구역은 도로나 골목의 규모가 차량 하나만 들어서도 굉장히 불편해지는 구조이다. 운전자와 동행자 한명은 편하지만, 주변의 수많은 보행자에게 불편을 준다. 게다가 북촌과 서촌은 명동과 인사동과 다르게 여전히 사람이 사는 장소다. 그들의 주차권리와 통행권리가 관광객의 차량 운전 편의보다 우선시 되어야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지 않는 개인 차량
운전자들에게 가끔은 차를 끌고 올 엄두를 못낼 만큼 벌금과 불편함을 몇몇 구역에서 경험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앞서 언급한 지역들은 차량 통제가 이루어지는 구역이고, 그 누구도 매출이 줄었다거나, 상권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해외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위에서 본 현수막에서 느낄 수 있듯이 2009년 당시에는 서촌 어디를 돌아다녀도 개발을 원하는 현수막이 가득했다. 당시 체부동 주민들의 바람대로, 아파트를 지었다면, 지금쯤 주차난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개발을 하며 지어진 거대한 지하주차장에 누구나 걱정 없이 주차를 했을 것이다. 물론, 덕택에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가 되었을 수도 있다. 당시 그들에게는 그들의 선택권과 요구를 할 권리가 있었고, 한옥을 보전하지 않고 아파트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대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다행이도)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고,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유입도 늘었을 것이고, 그런 개발이 큰 이익이 된다고 보는 사람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굳이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을 억지로 진행해야할 이유도 없어 보이고, 개발 리스크도 너무 높아 보인다. 이미 꽤 많이 변한 서촌이다. 지금이라도 서촌을 서촌대로 놔두자.
* 참고로 사진들은 2009년 3월에 처음 대상지 답사를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 2학기간 틈만 나면 들락날락했던 익숙해진 서촌의 모습이 아니라, 당시 한 명의 외부인으로 처음 마주한 인상적인 서촌의 모습들이다.
- 현재는 30m 내외의 6차선 도로다. [본문으로]
'도시와 건축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업 공간과 테러/ Einkaufszentrum - weiches Ziel für Terroristen (0) | 2016.07.23 |
---|---|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 그리고 도시화 (2) | 2016.06.02 |
공간이 당신을 혐오한다. (0) | 2016.05.20 |
뉘른베르크의 푸른 밤/ Die Blaue Nacht, Nürnberg (0) | 2016.05.11 |
익선동의 미래 (0) | 2016.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