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6. 20:00ㆍ도시와 건축/이야기
서울로 7017을 이야기할 때, 얼핏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 사람 입에서 항상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것은 뉴욕의 하이라인(Highline) 그리고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다. 하지만 큰 범주에서 고가 시설물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만 같은 뿐, 고가철도(철도시설)와 고가도로(도로시설)는 모든 게 다르다.
수풀이 자라난 채로 방치되어있던 폐선로를 이용할 수 있었던 하이라인이나 프롬나드 플랑테와는 다르게, 이 고가도로는 철거했어야 했던 시설이고, 아무런 수풀이 피어나지 않는 고가도로로, 아스팔트 맨땅에 새롭게 공원으로서의 아이디어를 심어 넣어야 했다. 즉, 서울로 7017은 애초에 시작 지점이 달랐다. 개인적으로 서울로 7017의 디자인 호불호는 불호에 가깝지만, 단순히 형태가 유사한 고가 시설이라고 하이라인과 프롬나드 플랑테와 비교하고 깍아내리는 것은 정말 더 형편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로 7017은 그냥 보이는 그 자체로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프로젝트다. 인공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인공적이었던 청계천이 처음 개장했을 때의 당황스러울 정도로 인공적이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하지만 동시에 매년 성장한 식생이 변화시킨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콘크리트 인공 시냇물이라 비판받았던 곳은 개장 후 일 년 만에 다시 찾았을 때는 예상을 못했는지 전혀 관리가 안된 채로 정글과도 같은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청계천의 식생과 서울로 7017의 식생은 다르고, 역시나 비교대상이 아니다. 전자는 목적 자체가 공원에 가깝다면, 후자는 정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울로 7017의 현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최소 공모전 당선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 디자인의 유래를 살펴봐야 한다.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는 전 세계에서 7명의 건축, 조경 전문가를 지명하여 진행된 공모전이었다. 서울시는 고가도로의 안전성을 문제로 전체 사업 자체를 폐쇄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사실 이는 대규모 혹은 주요 사업을 두고 항상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이 글에서 깊이 언급하지 않겠지만, 관련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서울로 7017 혹은 서울 스카이 가든이 근원이 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당선작은 네덜란드 MVRDV의 Winy Maas의 <The Seoul Arboretum, 서울수목원>이다.
MVRDV는 시각적으로 독특하지만 동시에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 콘셉트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대표적인 21세기의 건축회사다. 서울수목원이라는 제목과 위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쉽게 그들의 디자인 방식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려고 고민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2,3등 안(3등 안 제목은 흐르는 랜드마크 : 통합된 하이퍼 콜라주 도시...)과 비교를 해보면, 1등 당선작이 얼마나 명쾌한지 작품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명쾌한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다. 그것은 보통 공모전 자체가 지닌 문제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선 공모전에는 명확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나 청사진이 없었다. 1,2,3등 안이 다 별개의 프로젝트로 보일 정도니까 말이다. 초청된 건축, 조경 디자이너가 사실상 고가도로 구조물을 제외하면 백지상태에서 미래 청사진을 제출한 것이다. 이런 일들을 수없이 반복돼 왔다. 대표적인 예시는 DDP다. 자하 하디드를 추모하며/ Zaha Hadid(1950~2016)
링크 글에서 썼듯이 공모전은 충분한 제약과 기준을 바탕으로 발주처가 원하는 요구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기초적인 아이디어까지 요구하는 초청 공모전은 각각의 건축, 조경 디자이너의 잘 알려진 디자인을 원한다는 뜻밖에 안된다. 프랭크 게리에게 건축물 디자인을 요구했을 때 정확한 건축물을 그려낼 수는 없지만, 프랭크 게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변덕이나 지침과 법 상의 제재가 없다면) 독특한 곡면의 건축물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듯이 말이다.
즉, 명확한 요구, 제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아이디어/기본계획에 관한 지명 공모전은 각각의 건축가가 그간 보여준 특성에 맞는 작품을 원한다는 노골적인 뜻이다. 물론 그런 작품 중에서 해당 공간에 제일 잘 어울리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분명 공모전의 방식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튼 이런 상황과 조건을 두었을 때 MVRDV 혹은 Winy Maas의 도시건축적 콘셉트가 핵심이 되는 작업 방식만큼 유리한 접근 방법은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건물, 도로, 지형 이 모든 것이 생략된 채 녹지와 공공공간 네트워크만 보여주는 마스터플랜은 사실 눈속임으로 작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아래의 액소노메트리가 좀 더 현실적인 상상 가능한 미래의 이미지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1등 안은 고가도로를 공중정원으로 조성하는 안이다. 자연을 매개로 콘크리트 구조물을 생명의 장소로 전환하는 비전과 전략은 미래지향적이며 혁신적이다. 단계적으로 서울역 일대를 녹색 공간화하는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 점과 다양한 시민 및 주체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프로세스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또한 고가도로와 여러 장소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접근성을 제고했다는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서울의 기후를 고려한 정교한 식재 디자인과 식물 생육의 지속 가능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현상설계 공모 당선작 / 서울로 7017>
고가도로라는 선명한 축을 중심으로 자잘한 나뭇가지 가인근 지역의 공공 공간과 녹지로 촘촘하게 뻣어나가서 연결하는(듯한) 이미지들을 보라. "사람 중심의 보행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고가도로를 주변 지역과 긴밀히 연계하여 녹지, 문화, 소통의 공간으로 재생함으로써 서울역 일대의 변화는 물론 더 나아가 서울의 변화를 촉발하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충족시키는 작품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략 이런 Winy Maas의 아이디어와 기본계획 공모 과정을 거쳐 바탕으로 서울로 7017이 만들어졌다. 기둥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는 매달린 콘크리트 화분은 안전(무게)상 실현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지만, 전반적으로 Winy Maas가 내세운 이미지는 꽤 자연스럽게 현실화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서울로 7017을 방문해보았다. 공원이 아닌 정원 길로서 서울로는 평균 이상의 수준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하이라인 등의 모델로 삼았던 곳과는 성격이나 규모가 달라서 공원을 표방해선 안되었던 것은 명백하고, 다양한 화분이 비교적 친절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길은 꽤나 매력적인 편이었다. 다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그리고 인공 중의 인공적인 정원의 특성 때문인지 거의 실시간으로 수많은 노동인력이 관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래부터는 다수의 사진과 함께하는 인상 평.
성요셉 아파트를 지나서 청파로를 따라가며 보이던 서울로 7017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기둥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는 매달린 콘크리트 화분이 설치될 수 있었다면 더 근사해 보였을 것이다.
중림로 쪽에서 오르는 계단 진입부는 너무나 협소했다.
종종 엉성해 보이는 배수 시설은 조금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런 도로 한가운데서 이런 도시 풍경을 볼 수 있다고? 이것만 해도 우선 만족스럽다. 그러나 협소한 진입로뿐만 아니라, 그 아래 하부의 (공공) 공간으로서 매력이 떨어졌다. 서울로의 연결 공간으로서 이 장소 또한 유사한 디자인 맥락을 가진 공간으로 조성해야 할 것이다.
서울로 조금 더 들어가니 꽤 그럴싸한 정원의 느낌이 난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는 특성산 다른 길을 관찰할 수도 있었고, 그것 또한 꽤 매력적이었다.
윤슬과 만리재 광장은 서울로를 조성하며 만들어진 공공 공간 중에 가장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윤슬만이 아니라, 주변의 나무나 화분 배치가 안정적이었다.
만재로 방면으로 내려가는 서울로의 모습.
윤슬을 지나 다시 서울로의 수많은 나뭇가지 중 하나(서울역 뒤편)로 들어간다. 대로변 한가운데 슬픈 식물들...
이 나무들이 좀 더 뿌리를 뻗고 높고 넓게 자라면, 윤슬 주변의 공간은 꽤 근사해질 것이다. 다시 서울로에 올라타서 서울역 철로를 넘는 주 통로로 향했다.
사진 왜곡을 포함하더라도 꽤 넓은 공간.
쿨링 포그 살짝 인상적이었다. 식물에 수분 공급을 하면서 동시에 거리 지나는 사람들에게 쾌적한 기후를 조성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 이탈리아에서도 관광지에서는 쿨링 포그를 쓰는 식당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쿨링 포그의 흔적.
퇴계로 쪽으로 가는 서울로.
세종대로를 따라 저 멀리 남대문이 보인다. 서울로가 없었다면 보행자는 볼 수 없었던 풍경.
중간중간 전망대나 인포 포인트가 있었고,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들 역시나 꽤 좋았다. 아래 파노라마 사진이 윗 사진 왼쪽 전망대에 올라서 본 풍경.
한국의 다양한 식생을 모아놓은 서울로 덕택에 알았지만 이름은 모르던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약 1km(983m)에 가까운 서울로에는 약 24,000여 개의 식물이 새롭게 화분에 심겼다고 한다.
서울로 개장 전후에 여러 비판 기사가 있었는데, 억지스러운 비난 기사 말고, 수용해야 하는 비판이 담긴 기사가 하나 있었다.
- 좁은 보행로: "화분이 너무 커서 보행로가 상대적으로 좁은 것 같다"며 "특히 화분이 촘촘하게 있어서 경관을 보고 싶어도 난간 쪽으로 갈 수 없다"라고 지적하였는데, 확실히 나무를 땅에 심은 게 아니고, 나무 화분을 설치한 것이다 보니 공간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었고, 몇몇 출입로는 휠체어 사용자가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보조시설이나 엘리베이터 미비)으로 보였다.
- 점자 블록 미설치 문제: "고가 시점부와 종점부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다"며 "법적으로 모든 바닥에 점자블록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을 하였는데, 이건 해명이 아니라 변명이다. 모든 곳에 설치할 필요 없더라도, 새로운 명소에는 설치해야겠다는 것이 공공 프로젝트의 기본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자원봉사자가 1대 1로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운영 시스템을 보완하겠다"라고 덧붙였는데, 혼자 하더라도 어려움이나 문제없는 것을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게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익선동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서울로 역시 이 공간을 새롭게 개편하면서 배제한 기존 거주민에 대한 생각도 이어져야 한다. 서울역 일대는 대표적인 노숙자 거주 지역인데, 서울로가 조성되면서 꽤 많은 구역에서 노숙자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누구나 알듯이 더 이상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장소에서 배제된 것이다.
건물이 인접한 퇴계로에는 기존 건물과 연결되는 통로가 새롭게 조성되어있었다.
그리고 남대문 시장까지 계속 연결되는 서울로 7017을 따라가 보았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왼편에 남대문 시장이 보였다.
차량이 붐비더라도 왕복 2~4차선 수준의 도로를 양 옆에 낀 서울로는 서울역 뒤편의 서울로 7017 교통섬과 같이 나쁜 환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남대문 일대에선 다른 장소와 다르게 뭔가 묘하게 주변의 풍경을 가리려는 듯한 식재 선정이 좀 신경 쓰였다.
서울로는 이 지역의 도시재생(이라 쓰고 도시 재개발)의 신호탄으로서 성공한 듯 보인다. 애초에 보행자에겐 없었던 공간이나 다름없는 고가도로라는 공간에 정원과 통로는 만든 것 자체가 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기적으론 (이미 적지 않게 진행 중이었던) 기존의 건물 재개발/리노베이션 등 소규모/개별 개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서울역과 (점점 도시 밖으로 밀려나는) 소규모 물류기지 일대의 대규모 재개발(철로 지하화 등)을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다.
서울 시장이 어떤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를 (겉으로 보기엔)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여전히 대선 후보나 아무튼 성공적인 시장으로 기억되는 대표적인 기회 중 하나라고 보았을 때, 아마 용산공원/미군기지라는 대규모 부지의 전환을 생각하겠지만,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곳이기에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는 사업일 것이다. 서울역 일대 재개발 역시 국토부나 코레일 등이 얽혀있어서 쉽지 않은 사업이었지만, 철거해야 했던 고가도로를 도시정원으로 조성한 것은 그나마 가능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
서울시는 보행도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로는 어떤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내세워졌다. 하지만 보행자 친화적인 도시는 더 이상 쓸 수 없던 고가도로를 보행자에게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통 체증이 있는 도로의 일부를 선형 공원으로 만들거나 도로를 막고 광장으로 만드는 것에 더 가깝다. 이 과정에서 보행자, (개인) 차량, 대중교통 혹은 대안적인 개인교통((공유) 자전거 등)의 전체 모빌리티와 도시 (공공) 공간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서울로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와 함께 생활권 단위의 소규모 보행자 친화 프로젝트가 이어져야 한다.
서울로에 장애인을 위한 충분한 시설이 여전히 없는 것부터가 보행자 친화 프로젝트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이 결여되어있음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축을 따라 아름답게 선을 연결하고 다양한 색을 칠해놓는 것은 보행도시를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원 가꾸기 프로젝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생각보다는 매력적이었지만, 서울로 7017에는 여전히 더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2등 당선 안인 건축가 조성룡 씨의 작품 제목은 <서울역 고가:모두를 위한 길>이었는데, 이 작품과 프로젝트는 정말 모두를 위한 길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공모요강에서부터 이런 보행 약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을까? 이 장소를 더 다양한 시기에 관찰하며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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