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첫 기록

2015. 4. 5. 23:56여행/'15 서울

도시를 공부하고 서울에 살았지만, 전형적인 서울 촌놈[각주:1]답게 서울을 잘 모른다. 여느 대도시에서의 삶이 그러하듯, 일정 지역과 동네에서만 지내더라도 편리함 삶을 누리고 살기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도시내 다른 지역을 잘 알게 되는 시점은 아마도 이사를 가거나 혹은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다니게 되는 등의 삶의 공간이 변화할 때이다. 나름 대학을 서울 내 다른 지역으로 다니고, 도시를 공부하며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으나 여전히 (심지어) 베를린에 비해 서울은 미지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3주간의 여행은 여러 면에서 너무나 뿌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도시를 돌아다니면 꽃 피지 못한채 떠나야했던 학생들과 사람들의 죽음처럼 그 가능성을 다 펼치지 못하고 관리 받지 못한채 파괴되는 도시의 공간들로 인해 슬픔이 가득하다. 

지난 몇주간 업데이트가 전혀 없었던 이유였던 가득찬 3주 간의 서울 여행 첫번째 사진들. 최고는 아니지만, 기억할 만한.


서울 도착. 아직은 미세먼지와 황사가 본격적으로 도시를 덮치기 전.



길에서 담배 피는 것이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죄인 나라 그리고 도시. 성인이 성인 만화를 봐도 죄[각주:2]. 대부분 개인의 기호에 관한 사항들을 무조건 적인 공권력을 바탕으로한 통제를 한다는 것은 상식이 무너진 사회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5, 6층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도시 풍경에 익숙해져있다가 1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도시 풍경을 보는 모습은 너무나 어색했다. 내가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보낸 장소임에도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 답게 그동안 잘 가보지 못한 여러 동네를 방문했다.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싫어하는 나에게 노량진은 괜히멀리하게 되었던 장소.


여행을 마무리 지어가는 즈음에서야 겨우 용기내서 갈 수 있었던 장소. 그 전까지는 이렇게 겉만 돌 수 밖에 없었다. 1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역사를 싸그리 뭉개놓는 고층 빌딩을 지어놓고, 생색내기용으로 투명한 바닥 아래 존치해놓은 유적이 남겨진 종로 변으로 걸어다디는 것보다는, 빌딩 뒤편의 인간다운(?) 규모의 장소로 걸어다니는게 마음이 편하다. 회사 덕택에 꽤 돌아다닌 동네임에도 이번에 처음 본 골목들이 있어서 놀라웠다.


100층을 돌파하며, 제2롯데월드는 이제 송파구 인접 구역에서도 웬만하면 볼 수 있는 건물이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초법적인 대기업의 상징물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DDP나 제2롯데월드는 분명 단순 건축물의 수준을 놓고 봤을 때는 수준 높은 건물이지만, 두 건축물 모두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과정을 통해 지어졌기에 좋은 건축이 아니라 단언할 수 있다.


내가 모르던 서울. 위에서 본 풍경. 아래서 본 풍경 그리고 내가 모르는 풍경들까지.


이번 여행에서 특히 집중했던 장소는 바로 전통 시장이다.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대부분 개발의 여파에서 밀려나거나 혹은 피할 수 있었던 장소들이다. 그 덕택에 시장 주변의 지역들도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과거에는 지역의 중심지였던 시장들은 이제 대부분 상업거리 따위의 단순 소비의 중심지로 그 중심의 역할을 빼앗겼다. 몇몇 지역에서는 그 중심성을 되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노력이 꽃 피우기도 하고, 끝 없는 쇠락 끝에 재난위험시설이 지정된채 재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제2롯데월드가 굳건히 솟아있는 도시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그리고 정의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되는 걸까? 옛 것을 함부로 해도 되고, 법을 함부로 생각해도 되는 도시의 풍경. 물론 아이들은 이 언덕이 풍납토성이라는 사실을 알기보다는 놀기 재미난 언덕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유산보존과 삶의 조화가 문제가 된 최대의 사건은 역시 백제유적 풍납토성 발굴현장 훼손사건이 아닐까. 주민들이 굴착기로 발굴현장 1200여평 가운데 150평의 유적과 대형 수혈유구(구덩이)를 흙으로 덮고 건축자재를 쌓아 일부 파손하였다. 이들의 행위는 마침 유물정리작업을 위해 현장을 찾은 한신대 발굴단 학생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면서 중단됐다." 동아일보 매거진 기사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참조

개인의 재산권과 거주권이 걸려있던 풍납토성 일대 문화재 발굴 사업과는 다르게 제2롯데월드 사업이나 DDP 사업은 너무나 사실 너무나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


미세 먼지에 빨래를 말리는 모습. 서울 여행은 대부분 즐거웠지만, 인구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인구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열차 빈도수와 열차량 부족으로 인한 지옥철 경험은 약간 불쾌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코로 들이킬 수 밖에 없는 도시에서 지내는 그 느낌만큼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경험은 없었다.


새로 지어진 소위 명품 아파트 단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상의 풍경들.


독일로 떠날 때 특정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이 다 삭제되었다. 외장하드에 백업하는 연동 프로그램의 문제로 벌어졌던 일인 것 같은데, 다행이도 정말 잠시 쓰던 수준 낮은 디카였기에 수준 높은 사진은 거의 없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런 디카를 구해서라도 열심히 돌아다녔던 특정시기의 사진이 전부 소실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장소들의 대부분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중 다행이도 아직 남아있는 유진 상가 혹은 유진 상가아파트의 모습은 다시 기록할 수 있었다. 단지형이 아닌 과거의 아파트들은 이렇게 독특하고 다양하다. 그리고 새로 지어질 다양한 척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는 너무나도 암담할 따름이다.


주택가의 도로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슈퍼가 자리잡고 있다. 때로는 큰 나무와 마루가 놓여있어, 동네 사람들이 쉽게 모여드는 공공 장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당분간은 다시 갈 일이 없을 2015년 3월의 서울 첫 기록.

  1. 차별적 표현임. [본문으로]
  2. 그렇게 불법이다 보니, 더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성인 만화가 불법으로 판을 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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