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5. 05:45ㆍ여행/'15 서울
3주 간의 서울 여행에서 사진을 골라내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1.그 어떤 여행보다 밀도 높게 돌아다닌 여행이기도 하고, 2. 사진 보정(수평 보정 정도를 간혹)을 거의 안하는 대신에 선택한 사진이 기본적으로 적당히 볼만한 수준이어야 하고, 3.두, 세문장 정도 이야기를 쓸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이어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4. 사진을 워낙 많이 찍고, 5. 나름 의미가 있는 사진 위주로 찍기 때문에, 선택하고 선택하면 보통 첫번재 선택에 대략 50여개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한번 사진을 솎아내면 약 30여개의 사진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선정해둔 사진을 방치해두다가 꽤 시간이 흐른뒤 다시 보면 대략 15장 내외의 사진으로 추릴 수 있다. 평균적으로 하루 여행에서 2장 정도의 사진을 보여주는 수준이다. 이 방식은 베를린 일상 사진들을 선정할 때도 거의 비슷한데, 아무튼 다 보여주고, 다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성수동이 변화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정말 가끔 칼국수 먹으러 가거나, 고기 구어 먹으러 갔던 동네 였는데(족발은 학교 다닐 때 먹어본 적이 없다) 이제는 전혀 다른 동네가 되어있었다. 확실히 한국과 서울의 변화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업의 일환으로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서로 어렸을 떄 살던 동네를 위성지도로 찾아보았다. 전혀 변화가 없는 100명도 안되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온 그 친구와 다르게, 내가 살던 동네는 다 바뀌어있어서 너무 깜짝놀랐었다. 약간 외딴섬처럼 개발되었던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이미 개발이 다 완료되어있었다. 내가 스케이트를 타고 컵라면을 사먹던 논밭 위의 스케이트장도 군것질거리를 싸게 팔던 문방구에 가기 위해 돌아다닌 복잡한 주택가의 많은 부분도 개발 되었고, 스카이콩콩이 있던 허허벌판은 이제 완연한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원래도 깡그리 상업구역인 명동은 그리 좋아하는 동네가 아니다. 내가 명동이란 곳을 알았던 당시에는, 이미 프랜차이즈로 가득찬 후였다. 그리고 그때 이미 나는 다양하지 못한 것에는 재미를 못느끼기 시작했다. 맛있는 중국집 덕택에 가끔 지나치기만 하는 장소. 확실히 몇년 사이에 명동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더라.
그럼에도 서울의 많은 장소들은 이전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다. 심지어 그 거리에서 소위 '약 팔지마라' 할 때 약을 파는 약장수가 약을 파는 모습을 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거리 약장수를 본 날인데, 듣도 보지도 못한 이상한 버섯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여전히 저런 말도 안되는 것을 파는 사람도 있고, 그걸 열심히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며,.. 내사산과 외사산,.. 이거 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튼 산이 있는 서울의 풍경은 남다르다.
연남동은 성수동처럼 역시 변화의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는 곳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만큼 크고 변화가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역들이다. 어디가 변하는지 직접 알아내서 찾아가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이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양하다. 아시아권에서 롤모델로 생각하는 유럽의 도시에서 한구역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서울에서는 수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런 현상에 대한 분석도 많아지고, 관심도 많아졌고, 더불어 이 현상 자체가 부풀려진 면도 있다. 그나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리적)방식으로 지역들이 변해가고 있다. 연남동은 내 인생에서 손 꼽을 만큼 맛있었던 파스타 집을 찾았다. 물론 서울 기준으로만. 주변에서 유일하게 육식 메뉴가 없던 음식점이기도 했다.
어쨌든 여전히 젊음의 거리 홍대. 소위 새로 뜨는 힙한 동네를 찾는 것도, 사실 홍대나 명동에 밀려드는 인파에 비해서는 정말 소수 중의 소수 밖에 되지 않는다. 근데 왜 월세가 오르는 걸까. 권리금은..
세월이 멈춘 곳. 혹은 세월에서 밀려난 곳. 언젠가는 또 개발의 열풍이 불만한 동네가 서울엔 참 많다. 그만큼 대도시 서울은 넓어서, 정부가 모든걸 통제하거나, 관리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곧 철거될 시장. 너무나 멋졌고, 그래서 너무나 슬펐다. 전통 시장은 정기적으로 보수공사를 해가며 지켜야할 지역의 자산인데, 건물이 노후해서 붕괴위험으로 철거를 하게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몇년 뒤에 어떤 사람의 어떤 건물이 이 멋진 시장 건물이 있던 장소에 들어서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이렇게 백악산에 잘 보였나 싶었다.
서촌에서는 인왕산이 잘 보였던 것은 원래 알았는데, 산의 모습이 어색했던 이유를 독일에 돌아와서야 이해했다. 건물을 압도할만한 산이 전혀 없는 평지 베를린에서의 살면서 그러한 풍경에 익숙해지다보니, 유독 건물 위로 보이는 산의 존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꽤나 내사산 주변을 다닐 때면 산 사진을 많이 찍었나 보다. 고작 몇년 살았지만, 확실히 지형 없는 도시에서의 삶은 서울에서의 삶과 전혀 다르다. 억지로 인공 경사가 있는 공원을 만드는 것도 그런 맥락을 따져본다면 이해할 수 있다.
문화 충격의 서울 패션 주간. 베를린에도 이상하게 혹은 개성을 뽐내며 옷을 입거나 스타일을 내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패션에 관해서는 시각이 관대해진 편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추악한 건물을 배경으로, 개성 있는 척 하지만 서로 유사한 느낌의 옷을 입고 몰려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정말 곤욕스럽고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적어도 패션에도 어느정도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맥락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몰려 다니는(!) 부류에겐 대부분은 그것이 없었다. 그냥 패션 피플인'척' 뿐이었다.
동대문 뒷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곤욕스러웠던 내 두 눈을 정화했다. 그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완구 (도매) 골목. 나같은 소매 고객은 할인폭이 크지 않아, 실질적으로 별로 살 것 없다. 하지만 그냥 옛 추억에 잠겨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동대문 완구 골목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기농 찹쌀떡집. 기가 막히게 맛있는데, 기가 막히게 느끼하다. 가격에 놀랐지만, 먹고 나서는 인정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 폰, 타블렛을 만지고 있다. 물론 베를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타블렛을 만지기는 하는데 약간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베를린에서의 상반된 생활환경이 주는 느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오래된 집들이 정기적으로 관리 받지 않거나 못한채,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모를 재개발과 재건축만 기다려왔다. 자신의 집과 그 안에서의 추억 혹은 누군가의 추억을 단순히 돈을 위한 투기상품으로 활용하며, 그 외의 모든 것을 소모해온 우리 사회의 추악한 단면이다. 그런 사업을 통해 분명 누군가는 돈을 벌겠지만, 대부분 사회의 전체적인 손실로 끝날 뿐이다. 철거만을 기다리며 망가지고 있던 강남아파트.
조선시대 사람들이 지금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100년 뒤의 서울의 모습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영원할 것 같았던 것처럼 말이다.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 중 한 곳인 운현궁의 노락당. 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은 경희궁인데, 둘다 작고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발길이 뜸하다. 하지만, 그 어떤 궐보다 사실 매력적인 곳이다. 어쩌면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걸 지도. 이 사진을 보니, 문득 경복궁 같은데서 잔치 한번 크게 벌이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약 2주간의 2015년 서울 여행을 글 3개로 정리하려고 했던 욕심은 겨우겨우 써놓았던 두번째 기록으로 마무리하고, 2018년 서울 여행기 기록 이후, 2018년에 돌아보는 2015년 서울로 다시 정리해서 올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