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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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좀 고급졌던 도시 마르살라/ Marsala, Sicily
마르살라는 뭔가 묘하게 독특했다. 우선 숙소부터 독특했다. 형제가 운영하던 AirBnB 류의 숙소였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이미 장사는 안 한 지 좀 된 것 같은 화려한 부티크 옷가게 1층에 있었고, 그곳의 휘황찬란한 계단실을 따라 올라가면 디자이너를 위한 사무실이 있었다. (왜 사진을 안 찍어놓고 기억을 더듬어 설명하고 있는걸까...) 그 사무실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큰 안방과 널찍한 화장실 그리고 복도까지 홀로 사용하는 구조였는데, 가격에 비해 너무 시설이나 위치나 환대나 모든 것이 좋았다. 사실 두 형제의 환대에 솔직히 조금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는데, 떠나는 날 얼음물 1.5리터까지 챙겨주는 것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얼음물은 사랑이다.)아무튼 이 첫인상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내내 ..
2025.03.17 -
바다야 도시야 하나만 정해. 둘다 가질 순 없었던 도시 트라파니/ Trapani, Sicily
에리체에서 트라파니는 굉장히 가깝다. 내 디카 줌 만으로도 도시의 형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시칠리아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제 지중해에 둘러싸인 시칠리아에 온 목적 중 하나를 지켜야 할 시간이 왔다. 지중해 바다 수영. (바다 수영 관련해서 다음 글 참조: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바다와 기억에 남는 해수욕 스팟)방파제 건너편에서 수영을 했다. 사진에서 색이 다른 부분이 아마도 해안가에 고인 물이 아닌 지중해에서 오고 가는 해류가 아닐까 싶다. 지중해 어딘가에서 온 것 같은 너무나도 시원한 물에서 수영을 하니 더위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근데 바다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는 도시인이기에 앞서 바다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가장..
2025.03.14 -
짧은 만남이지만 아쉽진 않은 에리체에서 아침 산책/ Erice, Sicily
아니야, 나쁜 말 듣지 마. 에리체, 너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야. 다만 나는 대도시인이고, 너는 소도시 중에서도 소도시일 뿐이야.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지만 사실 유럽의 소도시(사실상 동네 수준)를 여행할 땐 어떤 감정이입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하루 이상 머무는 것이 오히려 도시의 매력이 반감되는 독이 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그냥 가볍게 휴양 느낌으로 왔을 때는 다르다. 근데 뭔가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 지역 사람들에 이입을 하는 스타일이라면, 역설적으로 소도시는 짧은 기간만 머무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에리체가 딱 그런 도시였다. 몇 시간이면 동네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는, 그래서 하루 이상 지내기엔 애매한 도시 아닌 도시.어제는 보이지 않던 물통이 보였다.후. 물론 주변..
2025.03.13 -
천공의 도시 에리체 저녁 산책(그 천공 아님) / Erice, Sicily
6년 사이 "천공"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굉장히 이상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가 되었다. 젠장. 천공은 낭만적인 중세 판타지 느낌을 주는 단어였는데, 그 천공이 이 천공이랑 다른 뜻을 가졌겠지만(천공 사람의 이름 뜻은 모름...) 이미 망했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단어가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때로 돌아갈 순 없겠지.아무튼 천공(天空) 넓은 하늘에 있는 듯한 도시인 에리체는 굉장히 독특한 지형 위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지도상 가운데 즈음 약간 삼각형 같은 모양의 주황색 점선 테두리가 에리체의 도시구역이다.) 차를 타고 올라올 때 그리고 에리체를 떠날 때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S자형 굽이치는 가파른 도로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중간에 멈춰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
2025.03.12 -
팔레르모에서 4일 차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Palermo, Sicily
이래저래 보고 싶었던 도시 공간을 다 봤고, 팔레르모에서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은 아껴두고 있었던 팔레르모 성당(Cattedrale di Palermo)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당으로 직진했다.디테일들 너무 마음에 들고, 카펫으로 만들어서 집에 걸고 싶다(?)도시건축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도시풍경과 건축물 구경하는 것인데. 사실 아는 것이 많지 않으면 막 엄청 재미있는 것은 또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서 뭐 일반인들에겐 아는 척하며 일반론적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지만, 도시역사적인 맥락에서 좋은 정보를 높은 곳에서 본다고 해서 바로 알아내는 것이 또 쉬운 것은 아니니까. 이럴 땐 전문가의 자존심 내려놓고 그냥 입 닫고 빵이나 먹으면 된다. 눈뜨고 풍경이나..
2025.03.11 -
팔레르모 2일 차의 밤은 1일 차의 낮보다 아름답다/ Palermo, Sicily
기본적으로 봄, 여름, 가을의 이탈리아 도시를 즐기려면 밤 시간대를 노려야 한다. 그러고보니 겨울 이탈리아는 가본적도 없고 상상해본적도 없어서 모르겠네. 흐음. (여행 리스트에 겨울 이탈리아 입력.) 당연히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도 마찬가지다. 첫날은 운전 스트레스로 일찍 잠을 청했지만, 두 번째 날은 놓칠 수 없었다.이 직선거리는 여전히 재미없어 보이죠?광장 가니까 느낌 오죠?바이브 보이죠?길거리에 터벅 앉아서 와인 한잔 해야 할 거 같죠?이거 알죠? (근데 이거 좀 너무 인위적이었음.)미쳤죠?아싸도 인싸인척 합석하고 싶어 지죠? (아님)청새치 미치겠죠(?)폐건물 속에 사람들 숨어서 마약하고 있을 것 같죠?여기 관광지 한복판에 있던 식당 가득한 광장이었는데, 분위기 너무 좋았다. 그 플라스틱 테이블 ..
2025.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