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4. 03:09ㆍ도시와 건축/이야기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139914/A-rare-insight-Kowloon-Walled-City.html
현대 도시의 규제는 역사와 그 역사속 시민들의 희생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규제가 없는 현대 도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다. 인터넷에 Kowloon walled city라는 기괴한 홍콩의 한 주택단지 사진과 글이 떠돈 적이 있다. 이 도시는 오랜 세월 전에 무허가로 지어진 주택단지로 밀도가 극도로 높고, 단지 내부에서 햇살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위생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치안 또한 안좋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이 주택 단지가 철거되기 전에 꽤나 자세하게 자료 조사가 되었고 수많은 사진들과 예술 작품으로 기록되어있다는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오래되고 역사적인 주택 단지가 철거되는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
규제 없는 도시의 최종 모습은 아마 Kowloon walled city가 아닐까 싶다. 지금 서울에서 규제를 줄이겠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Kowloon walled city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물론 무허가로 오랜 세월 동안 지어진 Kowloon walled city의 도시 환경과 현재 서울의 기본적인 도시건축법 아래서 새로 지어질 몇몇 건축물이 만들어낼 새로운 도시 환경을 감히 비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책 없는 규제 폐지는 지금까지 지어진 도시보다 수준 낮은 도시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미기에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 서촌 전경
그 수준이 낮은 환경에서 누가 살게 되고, 누가 일하게 될까. 해도 이전보다 덜 들게 되고, 통풍에도 이전 보다 덜 되는 고밀구역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뻔하다. 다 평범한 시민들이다. 하지만 그 구역의 규제를 풀고 개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개발업자들은 이미 해가 잘 들고 통풍도 잘 되는 정원 딸린 단독주택이나 1세대가 1층을 모두 사용하는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도시건축법 뿐만 아니라 많은 규제들은 일반적인 시민들과 대중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인 경우가 많다. 그런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시민과 대중보다는 소수의 이익집단을 위함이라는 것은 이미 2달전 엄청난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보고 경험했다.
* 서촌 전경
서촌을 조금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도대체 이 건물은 뭔데 혼자 이렇게 크지? 혹은 도대체 이 건물은 뭔데 혼자 이렇게 높지? 싶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건물들은 대부분 일정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이고, 그 일정한 시기는 잠시 도시 건축 관련 법규가 수정되거나 특별법이 제정되었던 때였다. 이 부분을 설명하려면 굉장히 긴 근대사 해설이 필요하므로 생략하겠다. 아무튼 ‘그런 건물들 대부분은 서촌에 땅을 가진 재력가 혹은 기업가가 당시 유력 정치인들과의 밀착한 관계를 통해 생겨난 건물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주요 개선사례를 보면 우선 높이가 정해지지 않은 가로구역의 도로사선제한 규정을 하반기 중 폐지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로에 의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은 일조·통풍·채광 등 위생적인 생활환경과 도시 내 스카이라인 등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도로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도로사선 제한으로 건축설계에 제약을 많이 받아 다양하고 창의적인 설계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도로사선 기준 폐지를 고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아주 경제 인터넷 뉴스, http://www.ajunews.com/view/20140612101451811
뉴스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당연히 높이가 정해진 구역의 제한 규정을 없앤다는 것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선 제한이 없어도 높이 규제가 있으면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도시 및 주거 환경을 어느정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높이가 정해지지 않은 구역의 도로사선제한 규정을 폐지한다니, 이게 뭔 헛소리일까 싶었다. 기자가 기사를 실수로 잘못 썼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 상식적으로 그럴 확률이 더 높을거고.
그 다음 이야기는 더 웃긴다. 국토부 관계자들은 도로사선제한이 왜 필요한 것인지 자신들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근데 건축설계에 제약을 받고 창의적인 설계가 어려워 폐지를 한다고 한다. 헛소리를 또 하고 있다. 그냥 재산권을 100%, 200% 다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압력을 넣어왔다고 이야기하라. 용적률을 꽉꽉 채우고 인센티브까지 완벽하게 채우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고압적으로 규정 폐지를 요구했다고 이야기하라. 괜히 애꿎은 디자인이니 건축 설계니 거짓말 하지 말자.
* PARIS 전경
거의 모든 유명 도시 건축물들은 도시건축 관련 규제를 역이용하고, 그 규제를 이겨내면서 나오는 것이다. 고층빌딩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뉴욕 맨하탄만 봐도, 그 곳의 고층 빌딩들 역시 사선규제와 유사한 규제를 적용 받아서 추악한 계단식 형태를 띄고 있다. 군집으로 뉴욕의 고층 건축물군은 멋있지만, 사실 멋진 몇몇 고층 빌딩을 제외하고는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평범하거나 도리어 멋없는 건축물 투성이이다. 건물의 군집으로서 멀리서 혹은 높이서 바라본 도시와 거리에서 바라본 일상의 도시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도시건축 관련된 규제는 엄청나게 오랜 세월 동안 세계 각국의 도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그 규제가 외국의 규제(특히 일본)를 베끼다 시피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와 우리 도시의 특색을 반영하지 못하고, 그로인해 우리 도시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와 반면 대부분 외국 도시들은 그 도시의 긴 역사에 걸맞는 강력한 규제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 규제가 단순히 역사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의 규제인 것은 아니다. 그 규제는 우리의 건강, 우리의 생명 그리고 우리의 삶의 질을 지켜줄 수 있는 규제이다. 우리 나라와 우리 도시의 특색을 반영할 수 있는 선에서 규제의 폐지와 규제의 수정은 인정할 수 있다. 근데 도로사선제한 규정을 더 나은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도 없이 폐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인 것이다.
그러니 거짓말 좀 하지 말자. 그냥 내 재산권을 100% 활용 못하게 하는 규제가 싫고, 내 부동산 투기를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 없는 규정이 싫고, 내 용적률 다 써먹지 못하는 법이 싫고, 또한 다른 이들의 생명, 건강 그리고 삶의 질은 나에게는 상관없으니까 내가 돈 좀 벌도록 원수 같은 규제는 제발 몽땅 다 풀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제발 좀! 거짓말 좀 하지말자! 사선 제한 받아도 멋있을 수 있다!
건축가들에게 어떻게하면 돈 덜 주고, 건축면적은 최대한 빼 먹으려는 사람들이 디자인을 그렇게 신경 쓸까? 그냥 단 한가지 이유 돈 더 벌고 싶어서 멋없게 지었던 것 뿐이다.
건축가들도 마찬가지다. 진짜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온전한 대안도 없이 당장 멋진 디자인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법규 검토할 것 하나 준다는 이유로 도로사선제한 규정을 폐지하는 것을 찬성할 수 있는가?
당신들이 하는 디자인은 그저 외적인 아름다움뿐인가? 아니면 도시의 환경과 주택의 환경 그리고 이웃의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인가? 그러고도 건축을 배우고 도시에 건축물을 만드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시험 문제 어려우니까 시험 쉽게 내달라는 핑계처럼 밖에 안들린다.
마지막으로 21세기 최고의 스타 건축가 Frank Gehry의 DG Bank 건물을 소개한다. 21세기 곡선 건축의 선구자이자 빌바오 효과의 장본인 그리고 수많은 시그네쳐 빌딩을 전 세계에 뿌려놓은 좋던 싫던 세기의 건축가 중 한명인 Frank Gehry의 디자인 마저도 얌전하게 만들고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위대한 도시건축의 도시 베를린이 보여주는 사례다. 규정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더 나은 규정으로 교체할 수 는 있다. 하지만 대책 없는 규정 폐지는 국토를 더 망치는 지름길이고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도시 경쟁력을 낮추는 길이며 동시에 도시건축의 조화로운 디자인을 망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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