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국가가 된 팔레스타인

2014. 7. 12. 22:35도시와 건축/이야기

한 사람의 세상은 그 사람이 경험하는 만큼 넓어진다.

책을 통해, 친구를 통해, 여행을 통해, 공부를 통해,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한 사람이 경험하는 것들이 그 사람의 세계를 형성한다. 세상에 그 아무리 많은 나라들과, 언어들과, 문화들이 있어도, 경험하지 않은 이상 그것들은 내 세상의 밖의 일이다. 

가령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서 200명의 사망자가 생겼고, 비공식적으로 200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시리아 주변국으로 피난해있는 상황들이, 그냥 한국에서 지낼 땐 해외뉴스 한켠의 작은 사건이 뿐이었다. 근데 이 곳에서 독일어를 배우며, 시리아 내전을 피해 10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독일에서의 정착을 꿈꾸는 친구를 사귀게 된 순간, 시리아 내전은 내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터키와 쿠르트족 그리고 그리스의 문제, 중동에서의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관계, 불가리아의 상황, 보스니아의 상황, 스페인의 상황, 그리스의 상황 등. 

아무튼 예전에는 머나먼 해외뉴스가 이젠 옆 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단순 하루 이틀의 여행보다 좀 더 내 마음 속에 더 깊이 들어오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잠시라도 그 국가에 머물렀던 곳의 이야기는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터키나 팔레스타인 문제 같은 것 말이다. 나름 한국에서도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고, 여러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세계를 알아가려고 했었다. 근데 여기선 사실 책 한권 안읽고 있는데도,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2013년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며 쓴 글


베들레헴 근교 광야지대

2006년 여름,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나는 중동 단기선교를 떠났다. 사실 선교라기보다는 그 당시 중동에서 활동하시는 목사님 혹은 신학 교수님들의 잡일을 도와주고 현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수준이었다. 그 일정 중 팔레스타인에서 교회를 세워가며 활동하시는 한 목사님 덕택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리는 없겠지만,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포위된 국가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마치 이탈리아 로마 안에 또 다른 도시 국가인 바티칸 왕국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 이후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나의 관심을 커졌다. 그래봐야 수많은 관심사 중 하나에 불과했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8C%94%EB%A0%88%EC%8A%A4%ED%83%80%EC%9D%B8

팔레스타인은 현재 크게 Gaza strip가자 지구와 West Bank요단강 서안 지구로 양분되어있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West Bank는 땅도 넓거니와 Jordan과 마주하고 있어, 출입국이 가자 지구에 비해 그나마 편리한 곳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금 이스라엘의 폭격이 시작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방문해본 사람은 그리고 몇몇 제대로 된 소식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건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전쟁도 분쟁도 아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언론의 짤막한 기사와 사진을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쟁을 하는 수준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현실에서 그 어떤 전쟁이나 분쟁이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겠냐만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폭격과 탄압일 뿐이다.



베들레헴의 한 슈퍼마켓

독일에 오면서 다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친구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의 대다수가 의사 혹은 약사가 되길 바랐다. 그건 단순히 팔레스타인에 의사나 약사 그리고 의약품이 부족해서 다친 이들을 치유해서 팔레스타인을 되살리겠다는 애국심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 주변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살릴 수 없었던 개인적 경험에 의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지금 독일에 온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그나마 가자 지구에서 어느정도 잘 사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돈이 있었기에 가자지구에서 버스를 타고 이집트로 넘어가, 이집트 임시 비자를 받거나 비자를 못 받으면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임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뒤 이집트에서 비행기 표를 구매하여 독일이나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길고 복잡한 방법으로 독일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몇몇은 크리스마스 휴가 때 팔레스타인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재수 없으면 다시 독일로 못 돌아오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비자로 왠만한 나라에 여행을 갈 수 있는 한국의 여권을 부러워했다.



베들레헴 거리

이스라엘의 폭격이 시작되며 페이스북의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아이들이 죽은 사진, 건물이 무너진 사진과 각종 메세지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일어난 일과 슬픈 사진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기는 어려워보인다. 획기적인 중재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이 끔찍한 일은 내가 죽을 때까지도 끊임없이 반복되다가 한 국가의 소멸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팔레스타인 봉쇄 장벽


팔레스타인 봉쇄 장벽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바라본 장벽. I am not a terrorist.


이스라엘 쪽에서 바라본 장벽. PEACE BE WITH YOU. 이 문구를 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얼마나 분노와 역겨움을 느꼈을까.

팔레스타인 도시 지역은 이스라엘이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 채 사람, 물자 등의 통행을 감시한다. 그들은 자조적으로 닭장에 갇힌 신세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이 장벽이 주는 억압감과 절망감은 엄청나다. 군복무에 있어서 남녀평등의 상징과도 여겨지는 바로 그 이스라엘 군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로 일을 하러 갈 수도 없다. 사소한 이유로 꼬투리 잡기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상에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출처: http://theviewfromthisseat.blogspot.de/2012/05/israel-and-palestine-is-peaceful_10.html

현재 팔레스타인은 도시의 연합체가 되었다. Gaza Strip이나 West Bank는 실제로 굉장히 넓은 면적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요 도시를 장벽으로 막았고, 지금도 그 장벽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윗 지도에서 2010년의 모습에서 볼 수 있 듯이, 넓은 면적을 가졌던 West Bank는 이스라엘에 의해 조각조각 분리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곳은 넓은 정원이 딸린 호화스러운 단독주택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정착촌으로 점령당하고 있다. 한곳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그들이 연대할 수 없도록 조각조각 나누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티스토리 블로그 위치 태그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베들레헴의 거리


베들레헴의 거리


베들레헴의 거리

과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왔을 이들 도시는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 그 자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 도시 내에서 자족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한 풀뿌리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적인 식수 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계의 도시가 더욱 더 서로에게 의존하고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 모순적이지만 도시 스스로 자생가능해야하는 상황이 점차 발생하고 있다. 이런 군사적 탄압만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기업에 의존하던 도시가 몰락하고, 관광에 의존하던 도시가 몰락하며, 도시민들은 도시 속에서 스스로 먹고 살아갈 길을 찾아내는 상황에 전 세계 도시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도시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계화 시대, 도시의 미래는 마치 이스라엘의 의해 분열된 팔레스타인의 도시들처럼 느껴진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각자의 입장과 각자가 처한 현실이 있겠지만, 뭐가 되었건 결국 피해보고 고생하며 망가진 도시를 되살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도시를 채우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고, 국가의 잦은 삽질에 오히려 도시들 혹은 시민의 연합들끼리 뭉치고 교류하는 현상이 더 짙어지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자마자 발견한 이런 상황에 대한 좋은 글. <위험사회> 저자로 잘 알려진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의 인터뷰. 국가를 넘어선 도시 간의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8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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