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건축의 미천한 경제성

2014. 7. 24. 16:20도시와 건축/이야기

Leopoldplatz, Berlin

도시 설계에 있어서는 공공 공간 설계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공공 공간 설계가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개인의 사유지를 제멋대로 설계할 수 없는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시는 공공의 영역이라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몰락하다 시피한 독일 사회에서 천주교, 기독교가 같은 성당을 공유하는 것은 일반화되어있다. 그리고 같은 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신자 수나, 예배 등의 수와 빈도는 낮은 편이다. 또한 쾰른 성당처럼 도시에서 가장 큰 성당(주로 도심 광장에 인접한 성당)같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아닌 독일 도시의 일반적인 성당 앞이라면 인적 드문 조용한 공원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유독 베를린의 여러 성당 앞은 텅빈 성당과도 대조적으로 항상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공사 중이었던 Leopoldplatz의 분수 광장은 사진 왼편에 나무 사이로 보이는 Karl Friedrich Schinkel의 작지만 우아한 성당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특히 아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도시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 어떤 학문보다 공공성 그리고 준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한다. 도시를 생각한다는 것은 멋지고 정갈한 건축물이 멋진 도시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겁게 활용하고, 놀고, 쉬고, 산책하고, 책 읽으며 보낼 광장, 공원, 거리 등의 공공 공간을 적재 적소에 디자인 할 고민을 하는 것이다.



Leopoldplatz, Berlin

이런 기초적인 학문적 고민을 넘어가서, 요즘은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도시건축이라는 학문의 경제적 무가치성 말이다. 내 일상에서의 예를 들자면, 도시설계나 도시답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비해서 독일 유학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나게(!) 쉬운 일임에도, 그 수요와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한다. 반응을 보면 거의 독일 유학 상담소를 차려도 성공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반해 아무리 건축에 대한 글을 쓰더라도 그 어떤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건축 잡지가 몰락한 한국에서 그리고 새로 사업을 하는 것이 대기업 입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그 현상을 초래한 것 역시 당연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전문적인 도시건축에 관한 글에 대한 수요가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건축이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사회적 기호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건축인들조차도 그들을 위한 매체와 그들을 위한 문헌에 돈을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그리고 건축물 안에서 평생을 보내는데도, 전문성을 줄인 대중적인 도시건축서적이 분야를 뛰어 넘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마치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모르듯, 도시와 건축의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은 거의 없는 편이다. 몇 안되는 건축 평론가이자 몇 안되는 건축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얼마전에 돌아가신 이용재씨의 훌륭한 서적들도,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따르면 그리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출판 시장 전체가 위기이니 그 안에서도 정말 작은 분야인 도시건축서적이 설 위치는 가히 쥐 콩알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만일 도시건축에 관한 글이 문화적으로 대중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정부의 지원을 통해 그 공급과 질을 높여야겠지만, 그런 기대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정부에 지속적으로 문의와 요청을 해야할 일이겠다.

이런 오랜된 도시건축계의 떡밥을 넘어서, 수많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던 이 광장을 보면서 또 다른 고민을 했다. 도시, 공공 공간, 건축물은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등의 산업물에 비해 굉장히 오랜 기간 활용되고,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도시 설계가, 건축가(이하, 도시건축가)는 최초의 설계비를 제외하고 최소 수년에서 최대 수십년간 활용되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그 어떤 대가도 받지 못한다. 집이 이뻐서, 아파트가 좋아서 다른 이에게 처음 지은 값보다 비싸게 팔려도 도시건축가는 아무런 소식을 듣지도,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한다. 이 광장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소를 즐기고 활용하고, 또한 상행위도 일어나지만, 도시건축가가 받는 수입은 첫 설계비 뿐이다. 책을 쓸 때 가능성이 있는 책들은 지속적으로 판매부수에 비례하는 인세를 얻지만, 가능성이 없는 책은 보통 인세는 커녕 처음 책을 출판할 때 출판료만을 받는다고 한다. (작곡가 작사가와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모든 도시건축가가 공간이나 건축물이 잘 활용될 때 지속적으로 수입(인세)을 얻기는 커녕 처음 설계비(출판료)만 받는 것는 것은 조금 이상해보일수도 있다. 물론 개인이 소유하게 되는 책과 개인 혹은 공공이 소유하는 건축물 그리고 공공이 소유하는 공공공간을 비교하는 것은 어폐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던 공공이던 그에 합당한 '설계건축물 사용세' 혹은 '설계공간 사용세' 등을 도시건축가에게 지불하거나 혹은 도시건축계를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던 말이다. 적어도 미술관, 박물관 같이 입장료가 있는 건축물에 관해서는 시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혹은 사용세가 아니더라도 건축물을 팔 때, '매매가의 1%는 이 건축물을 설계한 도시건축가에게 돌아간다.'와 같은 계약 조항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혹 건축물 내부에서 드라마 등의 TV촬영을 할 때 공간 사용료등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공식화된 시스템은 아니다.

나 조차도 생각한 시스템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된 이유 역시 간단할 것이다. 팔리는 책 가격의 몇%라는 정확한 기준이 있는 인세 기준에 비해, 건축물이나 공공공간을 활용 수준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기준을 세우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애매함을 떠나,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도시건축인들의 노동세계이다. 설계한 공간이 앞으로 잘 활용되던 못 활용되던 받는 설계비는 똑같다. 잘 활용되도 인센티브는 없고, 못 활용되도 인센티브는 없다. 단지 명성을 드높이거나 명성이 낮아지는 수준일 것이다. 그러면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대충대충 할 법도 한데, 그들은 항상 최선을 다한다. 하나하나가 그들의 경력이자, 그들이 꿈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넘어서, 알아서 설계 단가를 낮추고(후려치고), 알아서 야근비 없는 야근을 하거나 강요당하며 지낸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적게는 수개의 사무소, 많게는 수십개의 사무소가 앞에서는 경쟁을 하고, 뒤에서는 로비를 한다. 그런 주제에 내가 일하는 직업의 경제성보다는 나에게 일을 맡긴 발주처의 프로젝트 경제성을 더 따진다. 놀라울 정도로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집단임에도, 개인의 소득 수준과 노동권리, 그리고 사회적 윤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이 세계에는 노동조합 자체가 없다고 요약을 해야할까? 이와 같이 타락한 시스템에서 건설사와 같이 큰 기업에서는 어느정도 지속할 수 있겠지만, 건축사무소와 같이 영세한 곳에서는 지속불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그런 지속불가능한 시스템 속으로 젊은이들을 밀어넣는다. 공식 건축가가 되기 위한 두번째 단계로 건축사무소 따위에서 적게는 3년 이상 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1단계인 건축대학에서 5년을 공부했음에도 최소 3년을 더 근무하게 만들고, 합격률조차 그리 높지 않는 시험을 응시해야만 하게 강요한다. 이 시스템이 한국 도시건축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3년 정도 일하고, 몇년 더 일하다보면 적은 월급과 어짜피 못받는 야근비에 익숙해지며 어느순간 말뚝박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수 생겨난다. 시스템적 착취의 시작이다. 

한국의 도시건축가들에게 시작부터 창업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는 선배나 아는 건축가를 통해 공동으로 창업을 할 수 있겠지만, 홀로서기는 불가능한 것이고, 무조건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즉, 시작부터 이 글에서 언급된 것 이상의 드러운 꼴을 다 당하고, 혹 자신읃 드러운 꼴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는 비 상식적인 근무환경에서 근무를 하며 상식이 마비되어가며 도시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일반적인 도시건축가의 경제성은 계속 낮을 것이다. 졸업하고 3년 이상 근무를 해야하는 것보다는, 학업 중 의무적으로 1년 정도의 유급 인턴(혹은 방학 때)을 하고 졸업 후 바로 도시건축가가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창업 1~2년간은 무작위로 선출된 다년차 선배 도시건축가들의 평가 등을 통해 도시건축가 자격을 유보하거나 완전히 허가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애초에 자격증 대여는 꿈 조차도 못 꾸게 하고. 아무튼 현재의 도시건축사 제도를 늦지 않게 폐기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업으로의 '건축가'와 자격증을 소지한 '건축사'가 양분되기 때문에 그들의 직책이 건축사인지 건축가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냥 건축과를 졸업하면 동시에 건축가가 된다면, 건축사라는 이상한 단어는 생기지도 않을텐데.. 도시는 도시계획기술사라는 이상한 이름... 하...) 아무튼 폐기하기 전까지의 긴 시간동안의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그 제도를 더 합리적이고, 더 효율적이고, 더 상식적으로 대체할 시스템은 충분히 고안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스템이 개선된다하더라도 평범한 도시건축가가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질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꿈과 경력을 빌미로 노동의 착취 당하고 아이디어를 착취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 망해가는 건축사무소에서 뛰쳐나온 젊은 건축가들의 개인 사무소가 늘며 환경이 변해가고 있다지만, 기본적인 건축사 자격과 시험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도시건축계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애초에 책을 많이 안 읽는 나라에서 도시건축 출판물 또한 도시와 문화를 기록하고, 토론하고, 공유하기를 바라는 정부의 지원이 없는 이상은 현재 수준 이상으로 급격히 시장이 확대되기는 커녕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조차 사치일 것이다.


결론
도시건축이 개인 혹은 공공에게 미치는 경제적/비경제적 이득에 비해 도시건축가의 이득은 낮음
설계 건축물 혹은 공간을 통한 지속적인 수익 구조에 대한 공론화 필요
지속불가능한 시스템의 변화 필요: 도시건축사 시험 폐지, 도시건축 출판물에 대한 정부의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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