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윤리 그리고 나치 전당 대회장/ Reichsparteitagsgelände

2014. 7. 7. 06:23도시와 건축/이야기



1.

적어도 나에게 Nürnberg뉘른베르크라는 도시를 생각했을 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현되지 못한 또 다른 나치의 도시인 Dutzendteich듀젠트 호수지역이다. 뉘른베르크의 구도심을 보면 역사적 지식이 없이는 감히 나치를 떠올릴 수 없는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하지만, 과거에 비해서 너무 귀여운 이름으로 불리는 Dokumentationszentrum도큐젠트룸의 본래 이름인 Reichsparteitagsgelände나치 전당 대회장 건물을 한번만 경험하면 그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이 Dutzendteich에 있는 단일 건축물이 주는 경험은 색다르다. 적어도 내가 직접 경험해본 기자의 피라미드가 단순 건축물의 크기 그 자체로 나를 압도했다면, 이 나치 전당 대회장은 내부 중정의 거대한 공간감으로 나를 압도한다. 이 지역의 건축물들은 골칫덩어리 혹은 문화유산으로 여전히 뉘른베르크 도심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미천한 사진 기술로는 이 거대한 건축물을 담아낼 수 없지만, 남아있는 뉘른베르크 나치 건물 중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공간감을 주는 이 장소는 뉘른베르크의 숨기고 싶은 하지만 드러내놓은 뉘른베르크의 상징이다. 비록 이 문단의 주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여자 친구는 별 감흥을 못 느끼는 건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2.

이 건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내 전문분야와도 연관이 크다. 더 크고, 더 웅장하고 그리고 더 위압적일 수 있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실현할 수 없었던 나치 전당 대회장을 필두로, 이 지역 일대의 나치의 상징 건물의 전체 배치 개념을 계획한 이는 히틀러의 건축가인 Albert Speer알버트 스피어이다. 그 개념 아래서 뉘른베르크라는 도시의 크기와 수준에 전혀 걸맞지 않은 수많은 거대 건축물을 단순히 나치와 히틀러를 위한 우상화 작업을 위해 설계한 것도 역시나 Albert Speer를 필두로한 건축가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나치 시대만이 아니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건축 양대 산맥 중 한명인 김수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정권에 순응하지 않은 김중업이 김수근에 비해 서울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건축가들이 정권과 권력의 힘을 입어 건축물을 짓는 것은 예전과도 지금과도 전혀 다를 것이 없다. 획일화된 정부의 공동주택 공급과 대기업 위주의 공동주택 사업을 통해 고층 아파트 일색의 부동산 왕국을 실현할 수 있었던 주요 퍼즐 중 하나도,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지만 서도 어느 순간 일을 주면 큰 비판 없이 묵묵히 정해진 틀 안에서 나름의 창조적인 일을 하는 건축가과 도시설계가들이었다. 물론 건축업을 하면서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지금의 건축가들과 달리 과거의 건축가들은 먹고 사는 것의 기본적 문제를 넘어선 자신의 명예와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일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3.

오랜 인류의 역사동안 그 어떤 직업군보다 권력의 동반자였던 건축가는, 현재 그 어떤 시대보다 시민의 편 그리고 민중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관 주도의 건축 사업이 아닌, 크고 작은 시민 주도의 건축 사업 그리고 정부 사업이라 하더라도 시민이 중심이 된 사업이 세계 전역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점점 더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뭘 위해 일하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고 다니는 중대형 건축사무소가 그 어느 때보다 위기인 이 시대에, 젊은 건축가들이 굳이 정부나 사업가의 건축 사업에 무비판적으로 참여하는 것보다야 직접 시민 주도의 소규모 건축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나아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건축가가 탈 권력적이면서 상식적인 건축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해야하는 어려움과 그에 앞서 내가 배운 이론과 경험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과 끊임없는 대치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의 건축은 그리고 세계의 건축은 말 할 수 없이 힘들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열심히 한 작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어렵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건축가들이 권력의 동반자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재정적으로 여유있는 건축주이고, 그 의미는 자신의 건축적 욕망 혹은 건축적 이상을 실현시킬 몇 안되는 프로젝트의 집행권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오히려 일상의 소소한 건축과 디자인에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변화는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민의 편에서 작업을 하는 건축가들은 인터넷의 주목도 세계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시민들 모르게 정치권력과 자본이 힘을 쥐고 있던 도시 사회에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세계 전역에서 강해지고 있고, 시민을 위한 건축가의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히틀러의 건축가가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시민의 건축가가 되길 원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욕망에 중독된 극소수의 건축가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건축가가 선택할 답은 뻔하다. 이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히틀러의 건축가가 되지 않고, 대신 시민의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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