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윗 022: 정체성 찾아가기

2025. 6. 13. 19:00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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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1 (패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정말 싫어했다. (그렇다고 옷을 잘 입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평생을 애매한 홍대병 초기 인간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근데 언제부터인지 인간사... 모든 사람들이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관철하며 사는 것은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타인이 유행 따르는 것에 최대한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따르고 싶던 그렇고 싶지 않던 현대 기성복 시장의 영향 아래서 우리는 유행을 피해 갈 수 없다.

정체성 1 내 정체성을 패션, 헤어스타일, 행동 등으로 굳이 외부로 미친 듯이 표현하던 시절도 있었고, 그런 시기를 지난 이후로는 전혀 내 스타일을 표출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있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 땀이 많은 육체적 특징을 고려해 자세한 안 보면 다른 옷인지 모르는 단순한 스타일의 티셔츠들, 전반적으로 비슷한 검은색 옷, 재봉이 탄탄한, 패턴이나 무늬는 최대한 없는 그래서 옷에 드러나는 유일한 장식은 주머니, 재봉선 등의 기초적인 요소 외의 것은 원하지 않는다. 뭐 베를린이나 기타 대도시의 블랙 패션에 익숙하신 사람들이라면 그놈 중 하나구나 생각할 그런 대도시의 흔한 패션 정체성을 갖추게 되었고, 너무나 만족하며 살고 있다.

변화 2 집이란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집, 주거, 거주 온갖 용어를 쓰고 그것이 중요한 전공과 일을 했음에도 내 자신에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의사와는 아무 관련 없는 모부의 결정에 따른 가구와 조명으로 차있는 방 한 칸에서 살았던 유년 그리고 청년 시절. 자연스럽게 "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을 하기 시작했다. 책과 잡지, 내가 찍은 사진, 농구 유니폼 등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전자기기. 내 애착이 가득했던 것들은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억지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그래서 본가를 떠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처리를 못하고 있는 물건들이 많다.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테리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내 취향과 관심사로 작은 집을 채워나가고 있다. 인테리어를 위해 멀쩡한 물건을 버리거나 심지어 중고판매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성격이라 기존에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이런 소품을 하나 둘 추가해 가며 점진적으로 생애 첫 내 집을 만들고 있다.

정체성 2 집에 뿌리를 내리며 자연스럽게 집식물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이민자 정체성이 예상치도 못하게 이 식물에 투영되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더 애정이 깊어지고 있다. 내가 키우는 식물들은 대부분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나무도 아니고, 그리고 여기저기 떠다니고 엉키는 덩굴 식물도 아니다. 잎이 보통 크고 화려하지만, 그만큼 연약하고, 어느 정도 인공적인 환경이 요구하며, (상대적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진 않는 관엽 식물들이다.

집식물의 역사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와 궤를 같이 한다. 대부분 남미, 아프리카, 남아시아와 같이 Global South 지역에서 왔다. 그리고 이 식물들은 주로 이 집식물을 키우는 Global North 지역의 환경에 맞지 않고, 앞서 말했듯이 어느 정도 수준의 성장을 위해선 인공적인 실내 환경이 필요하다. 그들의 뿌리는 주어진 화분 크기만큼 내릴 수밖에 없고, 화분이 너무 작아도 아프고, 화분이 너무 커도 아프고,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아프고, 물을 너무 적게 줘도 아프다. 당연히 그들은 본토에서 자라는 만큼 자라지 못한다. 너무나 이민자의 모습 딱 그대로가 아닌가. 옮겨온 지역의 땅에 바로 뿌리를 내릴 순 없고, 주어진 화분만큼 딱 그만큼만 자랄 수 있는. 그래서 둘러싼 환경에 한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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