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도시, 베를린

2016. 1. 8. 04:34도시와 건축/베를린

오늘은 사소하게 기분 좋은 일이 몇가지 있었다. 하루종일 바쁜 날이라 수업 옴겨가는 시간에 Mensa Cafeteria에서 샌드위치와 티를 샀다. 3,20유로가 나왔는데, 내 동전은 2유로 2개, 1유로 1개, 그리고 총 19센트의 잔돈이 합쳐진 5.19유로뿐이었다. 즉, 1센트가 없어서 5유로 동전을 내야하는 상황. 계산을 하시던 아주머니는, 내 손에 있는 돈을 슬쩍 보시더니, 그냥 3,19유로만 받아가셨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려서 너무나 보고 싶었던 한국 책을 한권을 개인 소장을 위해 스캔했다. 전혀 생판 모르는 사람의 책인데, 우연히 내가 빌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캔을 하는데, 옆에서 복사를 하던 한 사람이 돈이 모자랐나보다. 몇장 만 더 하면 되는데 2유로를 넣기에는 아까웠나보다. (보통 독일 무인 복사기에는 잔돈 거스르는 장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옆 사람에게 작은 돈으로 바꿔달라는데, 바꿔줄 만한 작은 돈이 없던 한 학생이 선뜻 50센트를 건네주었다.

오늘 뿐 아니다. 이런 훈훈한 풍경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물론 최근 내가 돌아다닌 곳이 많지 않았던 탓도 있고, 돌아다닌 곳이 좀 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지역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제 3자의 3자에 불과한 내가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일은 자주 있었다.

겨울이 되면서 Zoo역에서 베를린 공대/미대 중앙도서관Zentralbibliothek[각주:1] 가는 Herztallee 다리 밑에 노숙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여름에 정점을 찍다가, 가을에 줄어들다가, 다시 겨울이 되면서 사람들이 늘어났다. 독일에서 노숙자는 der Obdachloser(m)/ die Obdachlose(f)/ die Obdachlose(p)라고 부른다. Obdach은 '머리 위 지붕(Überdach)'을 의미하고, -los는 '없음(영어에선 -less)'을 의미한다. 즉, 머리 위 지붕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위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RBB에서 3명의 여성 노숙자에 대한 인터뷰를 보았다. 한국에서 물론 독일에서 만큼 뉴스를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노숙자 관련된 다큐, 자료, 연구는 있었을지언정, 노숙자를 너무 당연하게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인터뷰 내용은, 언제부터 노숙을 했는지, 어려운 점은 뭔지, 앞으로 원하는 것은 뭔지 등이었다.

노숙자, 거지는 도시에서 항상 배척 당하고, 격리 당한다. 가난한 도시였던 베를린은 1980년 중반까지만 해도 노숙자는 당연한 도시의 일원이었지만,  그 이후 점차 도시공간에서 사라져야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도시 정부의 대대적인 작전을 통해 실제로 노숙자를 광장, 기차역, 공원 등에서 몰아내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베를린을 이야기할 때 '관용'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지금도 80년대 이전의 관용적일 수 밖에 없었던 가난한 베를린과 비교했을 때, 지금 베를린의 관용은 전혀 맥락이 다른 단어가 되었다.

언제나 예산이 빠듯한 유학생이지만, 나도 지하철에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에게 1유로 내외의 돈을 주곤한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꽤나 그럴싸한 연주를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그 연주를 구경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런 돈을 아낌 없이 주는 사람이 많은 도시도 분명 관용적인 도시겠지만, 적어도 베를린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싫을 수도, 국제적인 기준과 비교했을 때는 떨어지는 점이더라도, 도시의 일원이고 도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좀 더 관용적인 도시가 아닐까 싶다. 쾰른의 여성 성추행 및 강도로 인해 일어난 시위에서도 사람들이 성범죄에 반대gegen sexuelle Gewalt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에 반대gegen Rassismus, 성차별에 반대gegen Sexismus를 외치는 관용을 보여주는 것 처럼 말이다.

  1. 베를린 공대/미대 중앙도서관의 원래 이름은 Volkswagen-Haus였는데, 최근 그 이름을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인터넷 검색할 때도 분명 함께 뜨는 명칭이었던 것 같은데! 뭘까! VW Abgas Skandal 때문일까? [본문으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