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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지진의 기억을 새긴 도시: 이탈리아, 크레토 디 부리/ Cretto di Burri

by 도시 관찰자 2019. 9. 5.

이번 나폴리 그리고 시칠리아 여행기는 런던 1박 2일 여행을 기록한 형식을 따라, 어떤 (도시적) 주제에 따라 몇몇 도시, 장소를 묶어서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다니면서 간단하게 그 주제를 적어놓기도 하였다. 돌아와서 어떤 주제부터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중 제일 비교적 쉽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인 크레토 디 부리(Cretto di Burri, 영어로는 crack of Gibellina)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쉬운 이유는 현재의 모습을 만든 확실한 사건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여러 자료 조사를 하였고, 실제로 꽤 많은 양의 글을 썼었다. 하지만 그 글은 블로그에 (임시) 저장이 안 된 채로 날아가버렸고, 이후 의욕을 잃은 채로 글을 방치하고 있었다. 처음 썼던 내용보다는 많은 내용이 빠지게 되었지만, 이제 여행을 다녀온 지도 거진 2개월이 지났으니, 더 미루지 말고 차근차근 여행기를 써야겠다.

 

실제로 크레토 디 부리를 오고 가는 길에는 폐허가 된채로 남겨진 건물 잔해를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섬은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 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지진 활동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화산 활동을 하고 있는 에트나 산뿐만 아니라, 시칠리아 섬 인근의 작은 섬에서 꽤 활발한 화산 활동이 있다고 한다.

1968년 시칠리아 섬 서쪽 지역에 위치한 기벨리나(Gibellina)라는 작은 도시는 벨리체(Belice)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가 된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도시를 떠나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누오바(Nouva = 새로운) 기벨리나(Nuova Gibellina)라는 도시를 건설한다. 

기벨리나 시는 도시 재건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태였고, 그렇게 기존의 도시 기벨리나는 폐허로 남겨질 운명이었다. 이때이탈리아의 예술가인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의 도시의 조직을 시멘트로 남기자는 제안을 바탕으로 거대한 예술 작품이자 지진의 피해를 기억할 추모비가 될 기회를 갖게 된다. 당시 시장이었던 Ludovico Corrao가 군대와 기업 등에 도움을 요청하여, 1985년 처음 크레토 디 부리(Cretto di Burri)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1989년 비용 문제로 인해 계획의 2/3만이 완공된 상태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알베르토 부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남은 1/3 구역이 완공되었고, 이는 처음 크레토 디 부리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난 이후였다.*

* http://www.abitare.it/en/habitat-en/landascape-design-en/2015/11/06/in-gibellina-the-cretto-by-burri-is-finished-after-30-years/?refresh_ce-cp

 

사진 상에서 우측의 비교적 더 밝은 부분이 2015년에 새롭게 완공된 부분이다.

크레토 디 부리는 부리의 균열(Cretto=Crack)이라는 뜻이고, 크레토 디 기벨리나(Gibellina), 기벨리나의 균열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을 찾기 전에 수십 번을 위성지도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했었는데, 실제로 크레토 디 부리로 오고 가는 길에 보이는 이곳의 풍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틈만 나면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크레토 부리는 도시 조직(Urban Fabric)이라고 불리는 흔적을 남긴 예술 작품이다. 사람들의 삶의 흔적도, 개별 건물의 기록도 모두 사라진채로, 건물군이 형성하는 블록 그리고 블록과 블록 사이의 길만이 상징적으로 남겨져있는 것이다.

 

기벨리나 마을은 굉장히 경사진 자리에 위치해 있고, 크레토 디 부리 작품 북쪽까지 올라가려면, 생각보다 힘든 편이다. 단순화된 도시 조직이 규모의 감각을 조금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위 사진 중간중간 보이는 사람들이 이 작품의 규모를 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데, 동시에 그렇게 느껴지는 작품의 규모를 보고 있자면, 말 그대로 거대한 도시의 죽음이 형상화된 채로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 소름 돋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과 작품 밖 현실의 경계가 너무 명확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근처를 지난다면, 꼭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시칠리아의 국도 상태가 열악한 경우를 많이 보았지만, 크레토 디 부리를 가는 국도는 그나마 상태가 온전했다. 아마도 지진이 이후 다시 도로를 정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보통 트라파니(Trapani)나 에리체(Erice)에서 크레토 디 부리를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마르살라(Marsala)에서 머물다가 이동 도중 우회하는 방식으로 크레토 디 부리를 방문하였다. 아마도 대중교통수단은 없을 거고 (혹시나 있더라도 비효율적일 거라 생각.), 개인 차량 혹은 자전거 등의 개인 이동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가는 길은 구글 지도를 이용했다.

** 주차: SP5(Strada Provinciale 5, 크레토 부리 남쪽면을 지나는 국도)를 따라 도로변에 임시주차를 해서 가장 낮은 남쪽지역부터 걸어서 올라가거나, Via Alcamo에 있는 (아마도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하고 중간 즈음부터 진입해도 된다.

*** 인상 깊게 본 크레토 디 부리 사진 작품

이탈리아 사진작가 Salvatore Marra 사진

 

Alberto Burri, Salvatore Marra · Cretto di Burri

 

divisare.com

역시나 이탈리아 사진작가인 Oliviero Toscani의 사진

 

Oliviero Toscani – Cretto Di Burri - Éditions Louis Vuitton – Paris Photo 2018

The Louis Vuitton Editions shows the astonishing dimension of the work of Oliviero Toscani. Far from advertising campaigns, the book recounts the clash between his photography and the landscape shaped by Alberto Burri, Cretto. From the use of the image as

loeildelaphotograph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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