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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이탈리아 나폴리와 시칠리아에서 만난 음식들

by 도시 관찰자 2019. 11. 13.

백종원 씨가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스푸파) 촬영으로 시칠리아를 다녀왔다는 소식이 들리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시칠리아 이야기를 최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쓰는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음식과 간식에 대한 짧은 글. 나폴리와 시칠리아에서 먹은 것을 모두 찍은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기억에 나는 몇 가지 식사와 간식이다.

 

나폴리에서는 가고 싶었던 (수산물) 시장 골목 식당이 몇곳 있었는데, 아쉽게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혹은 공사 중이라서 단 한 곳을 못 갔다. 그래도 어찌저찌 기억에 남을 한 식당을 갔었고, 멸치 튀김이 정말 최고의 맥주 안주였고, 해물 토마토 파스타는 숨 쉴 틈 없이 흡입을 하였다.

 

나폴리탄 피자 Neapolitan Pizza

나폴리탄 피자를 그래도 이런저런 곳에서 몇 번 먹었는데, 결론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폴리탄 피자의 주요 특징 중 눈에 띄던 것은 도우의 부드러움과 피자의 가장 중간 부분의 도우 두께가 아주 얇아야 한다는 점인데, 그게 전반적으로 나와 맞지 않았다.

실제로 나폴리의 나폴리탄 피자 협회(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에서 Vera Pizza Napoletana라는 명칭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하는 피자의 규정(Regulations for obtaining use of the collective trade mark
“Verace Pizza Napoletana”)에는 지켜야 하는 재료, 생산 방법, 특징 등을 명시해놓고 있고,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특징을 명시해놨다. 특히 피자 중심부 도우는 특히 더 부드러워야 하고 그 두께는 0.25cm(+/-10%)를 넘어선 안된다고 한다.

 

리조또 Risotto

아무튼 피자는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땐 항상 찾아 먹었던 리조또. 밖에서 파스타를 잘 안 사 먹는 이유는 집에서도 맛있고 다양하게 파스타를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고(하지만 그 마음은 이탈리아에선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리조또는 밖에서 사 먹기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리쪼또도 종종 해 먹지만, 1인 가정에서 리조또를 해 먹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특히 가스레인지가 없이는. 아무튼 맛이 없을 수가 없었던 리조또.

 

아란치노 Arancino 혹은 아란치나 Arancina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스트리트 푸드인 아란치노(복수형 아란치니, Arancini) 혹은 아란치나(복수형 아란치네, Arancine)는 음식에 큰 관심을 두고 여행을 하는 편이 아니라서, 팔레르모 도착할 때까지도 아란치나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여느 관광지가 그렇듯, 적당히 여유 있는 일정에 눈만 멀쩡히 뜨고 다니면, 유명한/꼭 해 봐야 할/꼭 먹어봐야 할 무언가를 놓치기는 쉽지 않다. 아란치노 혹은 아란치나는 그 역사부터 시칠리아가 지금 전면에 내세우는 정체성을 잘 담고 있는 음식이고, 그로 인해 현재에도 정치적으로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란치노/아란치니는 시칠리아의 동부 지역(대표적으로 카타니아)에서 부르는 남성형 명칭이고, 아란치나/아란치네는 시칠리아의 서부 지역(대표적으로 팔레르모)에서 부르는 여성형 명칭이다. 아란치노/아란치니는 10세기 칼비드 왕조가 시칠리아를 정복한 당시 발명된 주먹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주먹밥의 명칭은 비슷한 시기에 아랍인들을 통해 시칠리아에 수입된 광귤(sour orange)을 닮았다고 하여(둥글고 황금색의 작은 주먹밥), 그 광귤의 시칠리아 방언 명칭인 arànciu로 붙였다고 한다. 이후, 이탈리아가 시칠리아를 정복하며 이탈리아어화 되어 아란치노(현재 동부지역의 표기 방식)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팔레르모에 새로운 오렌지가 수입되면서, arànciu를 기리기 위해, 남성형 아란치노를 여성형 아란치나로 변경했는데, 이때 동부 지역은 그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렇게 두 개의 명칭으로 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부 지역은 광귤을 닮은 그 형태로 남아있고, 서부 지역은 에트나 화산(Mt. Etna)을 상징하는 삼각형 형태로 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식민과 문화 교류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아란치노와 아란치나다.

최근에는 시칠리아에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보트 난민들을 위해 지역 활동가들이 하나의 상징(다문화적인 역사)으로 사용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arancin*나 arancin@ 같이 성 중립적인 표현을 제안하는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음식으로, 긴 역사적 기록만큼이나 현대에서도 역사를 쓰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숨쉬고 있는 역사적 길거리 음식이다.

많이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부의 에트나 화산 모양을 형상화한 아란치노가 맛있었다. 참고로 팔레르모를 필두로 한 서부 지역이 카타니아와 동부 지역에 비해, 원래의 맛을 더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아란치노/아란치나 자체가 기본적으로 내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전반적으로 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주랑 야식으로 먹긴 좋았는데, 문제는 아란치노/아란치나가 아니라도 시칠리아에는 맥주 혹은 다른 음료와 먹을 야식이 넘쳐나는 것이 문제였다.

아란치노/아란치나는  웬만한 동네 빵집에서 다 파는 음식이니까 꼭 관광지에서 사 먹지 않아도 된다. 사진 우측은 그런 빵집에서 사 먹어본 조각 피자(화산 모양 아란치노도 같이 샀지만, 사진을 안찍었다.). 시칠리아와 나폴리의 유일한 단점은 식당 피자가 빵집이나 배달전문점의 피자보다 나의 입에 안 맞는다는 점이었다.

* 위에 언급한 아란치노/아란치나 관련 내용은 아래 BBC 기사에서 더 자세한 내용 확인 가능.

 

The gender fight behind Sicily’s most iconic snack

Praised for its unique texture and message of solidarity, this iconic Sicilian dish is an surprising source of conflict within the island.

www.bbc.com

 

젤라또와 브리오슈 Brioche Con Gelato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젤라또인데, 시칠리아 섬에서는 좀 더 특별한 젤라또를 판다. 바로 브리오슈에 넣은 젤라또(Brioche Con Gelato)인데, 정말 천재적인 간식이다. 젤라또를 좋아하고, 흰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시도해봐야 한다. 한국에 붕어싸만코가 있다면, 시칠리아에는 브리오슈 콘 젤라또가 있다.

라떼 맛 젤라또와 티라미수 맛 젤라또를 브리오슈에 넣어서 먹어봤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우측 사진) 기본적으로 브리오슈 자체가 웬만하면 맛있을 수밖에 없는 데다가(이탈리아의 밀가루 음식은 기본적으로 훌륭하다), 빵과 잘 어울릴만한 두 가지 맛을 넣어서 먹으니 너무나 맛있었다. 젤라또를 빵(브리오슈)에 넣어먹을 생각을 한 시칠리안은 정말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칠리아에서는 정말 잘 먹었는데, 특히 심심하면 이런저런 동네 빵집에 들어가서 사 먹은 음식들(우측에 포장해온 토마토 스파게티도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하루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며 사온 동네의 배달 전문 피자집의 피자들이 정말 맛있었는데, 워낙 더운 시기에 갔었고, 열심히 돌아다녔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나폴리탄 피자에 실망을 한 상태였는데, 시칠리아에서 야식으로 먹은 (거의 미국식) 배달집 피자를 먹으니 너무나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천공의 섬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 에리체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거리는 제과점이 있다. 마리아 그라마티코 제과점(Maria Grammatico Pasticceria)이라는 곳으로 사진에 있는 것 말고도 이것저것) 몇가지 종류를 더 먹어봤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처럼 보였던 Bellibrutti(사진 속 왼쪽)이 제일 맛있었다. (에리체에서 실제로 가장 기본적인/유명한 시칠리안 간식은 제노베시 Genovesi) 사진 속 오른쪽은 알코올이 좀 함유되어있던 것이고,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선 제과점에서 진열해서 판매하는 제품은 들어가있는 재료(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맛)가 이탈리아어로 표기되어있어서 먹어보고 싶은 맛이나, 피하고 싶은 맛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스티기올라 Stigghiola

사진 우측은 한 축제 야시장에서 호기심에 먹어본 시칠리아의 곱창 스티기올라(돼지나 소뿐만 아니라 양, 염소, 닭 등으로도 한다고 함). 역시 세상 어느 나라에만 있는 음식은 없다는 생각이 굳어진 음식이었고, 맛이 조금씩 다를 순 있는데, 어떤 요리의 원리나 목적 등이 겹치는 음식은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백종원의 설명을 얼핏 봤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지역에 내장을 이용한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스티기올라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P.A.T.)으로 정식 등록된 시칠리아 음식이라고 한다.

 

파스타 Pasta

이탈리아 피자는 유명한 곳, 오래된 곳, 구글 평점 좋은 곳 어딜 가나 항상 그저 그랬는데, 파스타만큼은 정말로 어딜 가나 맛있었다. 파스타랑 리조또는 이탈리아에선 어느 도시의 어느 식당에서 먹어도 맛있다는 듯. 왼쪽 파스타는 지역에서 생산한 파스타 면과 어란(Bottarga)으로 만든 파스타.

* 생각나서 쓰는 이탈리아 조식 관련: 이탈리아 전반적으로 그런 것 같은데, 시칠리아의 조식은 보통 크루아상 그리고 나폴리에선 나폴리의 명물 스포리아텔라(Sfogliatella)와 함께 커피 한잔이 간편 조식으로서 기본 형태 같았다. 근데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한국과 독일을 거쳐서 와서 그런지, 이런 간식 같은 간편 조식은 “어차피 더우니까 오전은 포기한다.”의 느낌이 드는 구성으로 보였고, 아침이라서 먹긴 먹어야겠고+곧 더워질 것이고+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니까 맛있게 조금만 먹어야지의 느낌이 가득 드는 형태였다.

** 이탈리아는 와인이 유명하고, 와인이 대체적으로 시칠리아의 요리와 잘어울리는 것도 명백했지만, 이탈리아의 흔한 맥주들도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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