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2. 20:00ㆍ트윗
디깅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에 몰두해 미친 듯이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주로 문화와 관련된 분야에서 할 때 사용하는 용어였다.
옷을 잘 입는 친구의 가족사진을 봤더니 그냥 가족들의 패션 센스가 남달랐고, 음악적 취향이 좋은 친구의 집에 가득한 LP와 음악기기 같이, 1,20대가 개인 노력으로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세습되는 문화유산이 있다. 경제적으로 중산층이었지만, 경제적인 면을 제외하고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 없다는 것은, 드러내진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내가 애써 모른 척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었다.
내 삶은 행운과 노력으로 원하는 것은 대부분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주의자였지만, 이 문화 자본만큼은 짧은 시간 노력과 운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20대에 이미 느꼈었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취향에는 많은 시간과 자본이 들어가고, 문화유산이 없었던 나는 두,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순 없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대표적인 분야가 음악과 패션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뚜렷한 사람이긴 하지만, 20대 동안 관심 없는 척 마냥 만들지 못한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일면 나를 무미건조하고 무색무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질 때 이런 부분에서 자신의 색이 뚜렷하게 느껴졌던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제 30대를 한창 살아가고 있는데, 이제는 미뤄둔 그 열등감을 마주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세월 음악을 안 듣는 것이 디폴트였다. 이제는 매일매일 가볍게 이런저런 음악을 찾아서 듣고 있고,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가며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새로운 음악을 더하고, 내가 어떤 장르를 좀 더 좋아하는지 알아가고 있고, 음악을 좀 더 진지하게 느끼고 있다. (Big Thanks to New Jeans and MHJ.)
긴 세월도 짧은 세월도 아닌 삶을 살아가며, CEO집에서 차기 CEO가 나오고, 의사 집에서 의사가 나오고, 목사 집에서 목사가 나오고, 수많은 직업과 취향의 세습을 봐왔다. 나는 첫 전공+직업 선택에서 가족과 주변의 말을 듣지 않은 채로 나의 경험과 논리를 바탕으로 선택했었고, 이민을 오고 10년 즈음 직업을 바꾸며 이제는 정말 혈연 지연 학연에 있어서 아무런 맥락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기반 없이 지내왔고, 이제 조금씩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름의 취향을. 나만의 맥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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