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5. 18:00ㆍ리뷰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완성하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자신있게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뽑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조건들이 있다. 보통 영화나 소설(그리고 몇몇 사회과학 서적들)이 그걸 정말 잘 충족시켜주는데, 1. 시대성을 드러내는 이야기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 2. 그 시대의 사회 현상이 주요 주제 중 하나로 표현이 되고, 더 좋은 방식으로는 다양한 시간대를 설정해서 다수의 시대를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 깔깔 웃음이 나오지는 않아도 펑펑 눈물이 쏟아지진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다니다보면 3.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일종의 4. 로맨스를 느낄 수 있는. 등장 인물 간의 로맨스라기 보다는 내가 이야기에 끌리는가, 내가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싶은가 말이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 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준 이야기였다. 가끔 너무 슬프면 (한강 작가님의 소설) 그 이야기가 마음을 후벼파지만 그 이야기 안으로 정말 내가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든다. 물론 대온실 수리 보고서도 과거 이야기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지만, 현재의 이야기는 나도 바로 원서동으로, 창경궁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 - 작가의 말
책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좀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하나 둘 이야기가 쌓여가면서 결국 모든 이야기가 소설의 마지막에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게 되는데 그게 좀 후반부 내내 소름 돋고 더 몰입하고 소설 초중반부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게 되는 역할을 해주는데 너무나 신기했다. 도시를 오래 공부하면서 꽤 비슷한 관점으로 도시의 공간을 많이 공부하곤 알아가곤 했다. 그 안에 담긴 연대기적인 역사적 이야기부터해서 가끔은 특정이 되는 개개인의 사연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공간을 중심으로 엮고 이해하는게 내가 20대 중후반부터 그리고 30대중반까지 가장 애정을 가지고 했던 활동이었는데,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정확히 그걸 오랜만에 대리체험하게 해주었어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거의 처음으로(?) 선정해 보는 올해의 책이고, 꽤 오래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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