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관용

2015. 1. 25. 20:43도시와 건축/베를린


프랑스 사회를 상징하는 가치 중 하나인 톨레랑스(Tolérance)만큼이나, 베를린 사회를 (비밀리에) 상징해온 한 가치가 있다. 역시나 같은 의미의 Toleranz인데, 쓰이는 방향은 조금 달랐다. 전후 빈 집, 공터 따위에서 돈이 없는 이들이, 혹은 대안적인 삶을 사려는 사람들, 예술가들이 임시로 그 땅을 점유할 수 있게 부동산업자 혹은 정부가 암묵적으로 허용해주던 그 나름의 '관용'이었다. 그 장소는 누군가의 집이 되기도 하고, 클럽이 되기도 하고, 카페가 되기도 하고, 예술창작 공간이 되기도 하고, 슬럼이 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스쾃, 독일어로는 Hausbesetzung이라고 불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꽤나 오랜 세월동안 불법 혹은 때로는 합법으로 누군가의 사유재산 혹은 공유재산을 점거한 이들은 베를린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공유한 기사에서 Andrej Holm은 이제 이런 관용을 더 이상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땅을 점유하고 활용한 사람들이 계속 땅의 가치를 높여왔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베를린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자본가들이 돈을 버는데 있어 불필요하고 방해되는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해도 투자 없이도 땅의 가치를 높여주는 이들이었는데 말이다.

Cuvrybrache 혹은 Tacheles와 같이 (겉보기에는 이상한) 베를린의 명소들은 이제 철제 울타리로 둘러 쌓인채 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다. 가치가 충분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Andrej Holm는 베를린 뿐만 아니라 독일 도시사회와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베를린의 현 모습과 앞으로의 예상은 그리 밝지는 않다.

이런 문제는 사유재산에 대한 논의만 활발한 한국에서는 애초에 이슈로 쟁점화 될 일도 없는 문제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는 무엇인가?'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Wem gehört die Stadt?)'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시작하면, 분명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하리라 생각된다.


참조

http://www.morgenpost.de/berlin/article136676138/Das-Ende-der-beruehmten-Berliner-Toleranz.html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