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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시네마 천국 속 추억의 도시, 이탈리아 팔라쪼 아드리아노/ Palazzo Adriano(Cinema Paradiso)

by 도시 관찰자 2021. 5. 1.

* 이 글에는 시네마 천국 영화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시칠리아 여행의 주요 목적은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의 주요 배경이었던 팔라쪼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와 체팔루(Cefalù) 그리고 카스텔부오노(Castelbuono)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체팔루는 극 중에서 해안가 야외 영화 상영 장면을 촬영한 장소인 항구(Porta Pescara)가 있는 곳이고, 팔라쪼 아드리아노는 극의 주요 배경인 영화관과 광장 그리고 토토네 집 등이 있는 도시 그리고 카스텔부오노는 토토가 어릴 적 다니던 학교 건물이 있는 도시다. 체팔루의 시원한 해안가 도시 풍경도 기억이 남지만, 그래도 수십 번을 본 시네마 천국의 주 배경인 팔라쪼 아드리아노를 방문했을 때는 뭔가 마음이 남달랐던 것 같다.

시네마 천국은 2차 세계대전 중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가상의 소도시에서 자란 토토라는 아이가 (세계대전 이후) 성인이 되어 섬을 떠난 로마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80년대 후반 즈음) 잊고 있던 그 도시에서 날아온 부고 소식에 삶을 회상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과거를 회상하고 그 변화를 실감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이다.

도시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며 가장 눈에 띄게 된 점은 시네마 천국의 배경 도시가 영화 시작부터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이후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표현한 방식이었다.

 

ⓒCinema Paradiso
ⓒCinema Paradiso
ⓒCinema Paradiso

극 중 팔라쪼 아드리아노의 중심 광장은 이 도시/마을 사람들의 삶의 중심지로 묘사된다. 크고 작은 마을의 행사가 있는 장소이고, 사람들이 서로 안부를 묻거나 서로를 헐뜯기도 하는 장소다.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는 작은 도시에서 시네마 천국 영화관은 가장 최신의 소식(이탈리아 뉴스/외국의 영화 등)을 들을 수 있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작은 도시임에도 시네마 천국은 상영관의 어둠 덕분에 익명적인 공간의 역할, 그중에서도 주로 부정적인 행위를 가능케 한다. 누군가에게 침을 뱉거나, 맨 얼굴로는 할 수 없는 각종 행위들 말이다.

아무튼 영화 속 광장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La piazza è mia' (The square's mine!) "이 광장은 내 거야."라는 대사를 외치며 영화관에서 나온 사람들을 쫓아내던 광인의 모습이다. 그 앞의 대사는 '내가 광장의 문을 닫을 것이다.'라는 말이었는데, 개인이 공공장소인 광장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그의 발언과 행동 그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게 표현된다. 하지만, 실제로 21세기의 도시에는 (그게 어떤 (안전/보안 등의) 이유이건 간에) 개인과 그룹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광장이 존재하곤 한다.

이 광장은 영화 속에서 시대의 변화를 드러내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 초반에는 마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이 벌어지는 커뮤니티의 공공장소로 표현되었고, 누군가 로또에 당첨되는 성공의 (개인적인) 장소로, 유럽의 정세가 변화하며 독일로 이민을 가는 한 가정을 배웅하는 이별의 장소로, 토토가 입대를 위해 입영 버스를 타는 떠남의 장소로, 전역을 하고 돌아왔을 땐 광장廣場 그 의미 그 자체인 텅 빈 넓은 장소로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시네마 천국이 무너지고 토토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주차장이 되어버린 장소 등으로 말이다.

 

불타고 새롭게 지어진 시네마 천국 영화관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철거되기 전의 모습(ⓒCinema Paradiso) 그리고 2019년 당시의 모습

세월이 흐른 이 작은 도시의 영화관은 누구도 찾지 않는 폐허가 된다. 결국 주인공이 도시를 다시 찾아왔을 때, 알프레도의 장례식과 영화관 철거가 진행되며 토토가 이 도시를 기억하는 가장 큰 추억 두 가지가 사라지게 된다.

도시의 중심적인 공간이 예기치 못한 불행한 화재로 사라졌다가 근본 없는 재원(복권 당첨)을 바탕으로 재건되고 결국은 몰락하게 되는 것을 감독이 의도했는지 모르겠다. 화재가 없었더라도 유럽의 작은 마을과 도시에서 젊은 인재들이 도시로 이주해 가는 (유럽) 근현대사회의 도시화 현상에서 시네마 천국 몰락은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이탈리아 그리고 수많은 세계의 소도시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주로 소도시에서 주요 이탈리아 대도시로 이주해 갔다면, 이제는 유럽연합 전역의 대도시로 이주하며 이탈리아 소도시는 인구가 감소하며 소멸을 앞두고 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마을에 위치한 집을 1유로에 판매 중. 청년들에게 이주 정착금을 지원. 28년 만에 처음 아이가 태어난 이탈리아 마을 등의 소식은 그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혹은 그런 이탈리아 소도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이야기자, 사실은 그렇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드러낸다.

 

토토가 섬을 떠난 이후 그리고 시네마 천국 영화관 철거까지의 장면을 유심히 보면 광장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사람이 거의 없는 텅 빈 장소로 묘사된다. 그리고 내가 처음 도착한 팔라쪼 아드리아노에서 마주친 중심 광장은 주로 주민들의 차량과 관광버스가 주정차하는 장소로 활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영사기를 돌려 건물 외벽에 영화 상영하던 장면 속 그 건물이 이 사진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왼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영화 촬영 떄는 1층의 문과 2층의 창문만 있었는데, 현재는 왼쪽에 문 1개와 창문 2개가 늘어난 모습이었다. 오른쪽 집의 모습은 발코니가 바뀌었고, 문 위의 차양시설도 없어졌다.

괜한 쓸쓸함을 느끼며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을 때 광장에 있는 분수대에선 아마도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슬슬 광장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고,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물통에 떠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작 반나절 둘러본 것이니 실제 이 광장이 텅 빈 장소인지, 주차장인지, 만남의 장소인지, 붐비는 곳인지는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시칠리아의 한여름에 대낮에 광장에 사람이 모일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낮에 이렇게 사람들의 왕래와 교류가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쓸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시의 느낌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광장 한편에는 시네마 천국 박물관(Museo Nuovo Cinema Paradiso)이 있다. 아주 작은 박물관이고, 사진/신문 스크랩 중심의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시네마 천국 세트+팔라쪼 아드리아노 도시 모형인데, 실제 구글 지도를 봐도 그렇고, 영화 속 모습과 방문했을 때 당시의 도시의 풍경을 꼼꼼하게 비교해 보면 가상의 건물이었던 시네마 천국 영화관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건물이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물론 보수를 열심히 한 집도 아닌 집도 있었다.

* 아래부터는 본격적으로 팔라쪼 아드리아노의 풍경

영화 내에선 이 지역의 지형이 어떤지 쉽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토토의 집으로 가는 길의 경사 등에서 어느 정도 지형이 존재하는 마을로 느껴졌었다. 실제로 팔라쪼 아드리아노 주변으로는 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토토네 집 앞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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