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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가난한 마피아의 도시, 이탈리아 나폴리에 대한 인상/ Napoli

by 도시 관찰자 2020. 5. 30.

마피아의 도시 나폴리

Rotonda di Via Nazario Sauro

나폴리가 이탈리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는 정보는 나폴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폴리 관광객의 총 숙박일은 이탈리아 전체에서 9위 정도인데, 개인적으로는 나폴리라는 도시는 대충 아름다운 항구 도시라는 모르는 것과 다름 없는 이미지만 있었던 도시다. (심지어 여행 중에는 항구 쪽을 거의 가지도 않았다) 이 도시에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소설로 형성된 근현대 나폴리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는 이 지역의 권력을 잡은 집단인 마피아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ZDF에서 방영 중인 나폴리의 마피아에 대한 짧은 다큐를 봤고, 겸사겸사 그 내용도 짤막하게 요약한다.

 

Mafia Neapel – Der lange Arm der Camorra

In Neapel sind die organisierten, kriminellen Familienclans der Camorra Teil des Lebens. Bedrohung und Gewalt sind allgegenwärtig, denn die meisten Geschäftsleute werden erpresst.

www.zdf.de

나폴리는 Camorra라는 클랜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데, 나폴리 인근 지역에 약 6천 명이 마피아 멤버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마피아에 대해 저항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이들은 가게 앞에 스티커를 붙여놓고, 자신들의 가게에선 마피아에게 돈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표시를 한다고 한다. 요즘은 과거처럼 마피아가 직접적인 살인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고, 저항의 움직임도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마피아가 사라진 것도, 마피아의 협박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나폴리의 현재 상황이라고 한다.

관광객으로 나폴리를 돌아다닐 때면 이 도시는 얼핏 보기엔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저항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 소상공인은 마피아에 보호비용(Pizzo)으로 돈을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마피아는 대략 매상의 20~40%를 받아간다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카페에는 원두, 우유 등의 재료를 직접 공급하는 식으로 권력을 이용한 착취의 굴레를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마피아는 모든 가능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데, 이탈리아 국내총생산 규모가 약 1조 7000만 유로(2017년 기준) 정도이고, 마피아는 한해 1600~1800만 유로 정도의 돈을 거둬들인다고 한다. 국내총생산의 7% 수준이 범죄 집단 내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도시를 가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가난한 도시 나폴리

나폴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은 "여기 정말 가난한 도시구나."였다. 중앙역 주변으로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나 신축 공사장으로는 가릴 수 없는 가난함이 느껴졌다. 21세기 가난한 (대)도시의 대표 격인 베를린에서 꽤 오랜 시간 살았기 때문에 이 정도 이름 있는 도시에서 숨길 수 없는 가난함이 느껴진다는 것은 정말로 가난한 것 일 수밖에 없었다.

 

Via Pasquale Stanislao Mancini
Via Alessandro Poerio

1. 나폴리는 더럽다. 가난한 도시의 자연스러운 특성인데, 도시 위생을 책임질 지방정부의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삶에 익숙해지면서 도시 환경이 더 더러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도시 위생이나 안전에 대한 감각이 1도 없는 상황을 많이 보았다. 공사장에 가림막 없이 먼지랑 모래 날리는 채로 공사를 한다거나, 쓰레기 수거 장소에는 온갖 쓰레기를 다 함께 막 버린 모습이라거나.

 

Via Miroballo Al Pendino
Via Chiatamone

2. 나폴리를 떠날 때 즈음 드는 생각은 나폴리는 이탈리아의 홍콩 같다는 것이었다. 항구 도시면서, 경사가 비교적 심한 곳에 고밀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유사한 물리적 특징이 많이 보여서였다. 동양의 베니스와 같이 서양의 도시를 어떤 미의 표준으로 두는 표현 방식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으로서 시도해본 생각이었다.

 

Via Giovanni Ninni

3. 스쿠터의 세상. (3일간의 관찰 결과이지만) 나폴리에선 말 그대로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와 스쿠터를 타기 시작하고, 거의 초등학교 졸업하면 동네 바운더리 내에서 직접 스쿠터를 몰기 시작하는 듯했다. 나폴리 거주민들에겐 스쿠터가 마치 자신의 몸과 같아서 1cm 공간 여유만 있어도 스쿠터가 항상 치고 들어온다. 동시에 이들은 스쿠터를 탄 채로 끊임없이 친교활동을 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자동차와 스쿠터 운전자들이 도심을 돌아다닐 때 끊임없이 경적을 울린다는 점이다. 차와 스쿠터가 질주 중이다는 경고음이기도 하고, 사각지대에서 서로 조심하기 위한 신호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폴리의 경적소리는 빵빵이 아니라 “삑”에 가까웠다.

* (업데이트 2021.09.14) <이탈리아 사람들이라서> 책에서는 이탈리아에서는 14세부터 배기량 50cc의 차량은 운전할 수 있다고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결과 해당 수준의 차량에는 스쿠터도 포함이 된다고 한다. 즉, 초등학교 졸업한 나이가 되면 실제로 스쿠터를 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Via dei Tribunali
Via dei Tribunali
Via S. Sebastiano

4. 역설적으로 가난한 도시가 주는 자유로움과 매력이 있다. 모든 것이 비싸지고, 새로워지고, 정해진 규율과 시스템대로 움직이는 현대 대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통제할 공권력이 부족한 도시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특징들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일주일 정도 더 길게 지내보고 싶은 도시였다. (시칠리아 섬 일부를 또 돌아보고 싶기도 하고)

5. 덥디 더운 여름의 나폴리. 여름 시즌에는 오후 5시 전까지 너무 더워서 도시 내에서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꽉 찬 3일 여행이 전혀 꽉 차지 않은 3일이었다.(한나절은 폼페이를 다녀오기도 했고)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도시에선 오후 5시 즈음부터 도시에 선선한 바람 불기 시작했다. 도시의 건물 밀도 높은 특성상 시내의 거리는 그림자가 져있어서 오후 5시에도 비교적 돌아다닐만했지만, 오후 5시를 넘어야 각종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도시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여름밤 나폴리의 분위기를 좀 더 길게 느끼려면 더 긴 기간 동안 이곳에서 머물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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