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6. 21:00ㆍ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나폴리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나폴리를 찾았던 가장 큰 이유인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의 주 무대인 리오네 루차티(Rione Luzzatti/ 구글 지도 위치)를 둘러보러 갔다. 나의 눈부신 친구 책 자체는 출판 당시 이탈리아에서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영어 번역 이후 전 세계적인 열풍을 끌었다고 한다.

나폴리 4부작이라고 불릴 만큼 나폴리와 이탈리아 곳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 속 주요 무대가 리오네 루차티 지역이라는 것이 밝혀지거나 직접 언급된 적은 없다. 하지만 리오네 루차티를 아는 사람이라면, 소설의 배경이 그곳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실제 드라마 촬영은 다른 곳에서 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나폴리 구도심에 가까이 위치한 노동자층 구역인데, 지리적으로 북쪽엔 대로가, 동쪽과 남쪽에는 철로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교통 편의로 인해) 전반적으로 산업 구역가 위치한 (주거 용도로 보면) 외딴섬과 같은 곳이다.
파시즘 시기에 건설된 당시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하는 4층 아파트 건물로 채워져 있다. 아마도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같이 도시건축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정도나 겨우 관심을 줄 만한 지역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이 지역이 철거돼도 그 누구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을 그런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Only Elena Ferrante could make the area famous. Nobody would have ever come for a tour this way before.”
- Rossella Amato, a retired former teacher at the local elementary school (기사 링크)


한국 사람들이라면 주공 아파트 등을 떠올릴법한 그런 유형의 주택단지가 아닐까 싶다. 크고 작게 다른 점이 많지만, 큰 틀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세상 수많은 도시에 생겨난 그런 유형의 주택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공 아파트 등의 아파트 단지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공원이나 거리 코너에는 건물 지상층에 크고 작은 가게가 위치해있었다는 점이고(쇼핑몰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거리를 덜 쓸쓸하게 만들었다. (아래 사진)





아파트 중간중간 드라마 이미지를 벽화(사진 왼쪽 벽)로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책의 성공 그리고 드라마 제작에도 불구하고, 벽화를 제외하면 이 지역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2019년에는 캄파니아 주지사(president of the Campania region, Vincenzo De Luca)가 지역에 헬스센터 개설을 위해 2백만 유로 투자 선언을 했다고는 하지만, 거주민들은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것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We all know each other here. It is still safe—an old-school neighborhood"
- Maurizio Pagano, a writer born and bred in Rione Luzzatti (기사 링크)
밤에 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낮에는 그냥 평범하게 한가롭고 안전한 이탈리아의 주거 지역이었다. 인터넷에는 위험하다는 평도, 안전하다는 평도 있었다. 안전 문제는 공공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그걸 느끼는 개인의 영역에 따라 위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은 어느 정도 안전에 신경을 쓰길 바란다.

드라마 제작 이후엔 Campana region의 지원으로 공공 도서관에 드라마 상 캐릭터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사진에서 출입구 옆에 창문은 벽화)

구역 내부를 둘러보고 다시 처음 왔던 길로 돌아왔을 때까지 느껴진 것은 엘레나 페란테 소설이 아니라면 관광지로 매력적인 곳은 아님은 자명하다는 것이었다. 이 지역은 최근에 중국인 커뮤니티가 커지고 있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역 한편에 대형 중국 상점이 갓 문을 연 상태였다. 지역의 변화는 문화적 성공 때문이 아니라, 경제/인구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상점을 지나면, 소설 속의 그 터널이 보인다.

작은 폐쇄적인 공동체 공간을 넘어서 나폴리의 바다와 항구를 향해 가기 위해서 지나야 했던 동굴. 21세기에 그리고 성인 남성이 보기엔 별것 아닌 터널이지만, 전혀 다른 시기의 소설 속 주인공에겐 상징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 찾아가면, 너무나 작아 보이는 초등학교의 운동장을 생각해보자.)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는 4부작 소설이라 한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을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사회적 틀(관습이라던가,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제약이라던가)로 정해져 있는 운명을 벗어나는 서사로서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이해했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 속의 현실의 장소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이 주어진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그런 작품들.

리오네 루차티를 가던 길에 첸트로 디레지오날레(Napoli Centro Direzionale)도 지나갔었는데, 나중에 정보가 좀 모이면 해당 지역에 대해서도 글을 쓸 예정이다.
* 참고한 기사들
Dissolving Boundaries -- Ferrante's Naples
www.arcgis.com
What to Do in Elena Ferrante’s Naples
We recently published an article about using the Neapolitan novels of Elena Ferrante as guidebooks to Naples. Here are some tips on how to navigate her city.
www.nytimes.com
Elena Ferrante’s Naples, Then and Now
The anonymous author’s novels can serve as a sort of guidebook to modern Naples.
www.nytimes.com
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9-01-28/naples-s-rione-luzzatti-area-has-become-ferrante-famous
Elena Ferrante's Naples – a photo essay
We follow in the (fictional) footsteps of the heroines of My Brilliant Friend and its sequels, into the alleyways, gritty apartment blocks and piazzas of this energetic and fascinating city
www.theguardian.com
Naples: Elena Ferrante’s brilliant city
Fans of the writer’s Neapolitan novels are flocking to discover the south Italian city, whose personality is as important to the books as the protagonists
www.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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