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 15:37ㆍ도시와 건축/베를린
* 2020년에 썼던 글인데, 여전히 진행 중인 주제의 글이라 약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글을 올립니다.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의 이야기였는데, 우연히 트위터에서 HEAPS MAG에 올라온 동유럽 힙스터에 대한 글 관련 트윗을 보고서야 드디어 입을 뗄 수 있었다. 작은 논란이 일어났던 해당 트위터 원문은 지워졌는데, 복사해 놓았던 내용을 토대로 소개하자면, 사진의 배경은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였다. 그리고 윗 링크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곳이 키예프인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힙해 보이는 키예프 젊은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떤 아티스트가 몇 년 전에 키예프가 가난하지만 쿨한 Poor But Cool한 도시라는 언급을 했었고, 현재 우크라이나 대도시 젊은이들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라는 내용을 소개한 트윗이었다.
"가난하지만 쿨한"이라는 슬로건의 원본은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베를린 전 시장이 베를린을 가리켜 한 말인 가난하지만 섹시한Arm aber sexy (Poor but sexy)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바로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도시 베를린에서 도시를 공부를 하고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점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유럽에서 가난하지만 문화적으로(섹시/쿨/힙하다며) 뜨는 도시라는 것은 유럽 전역의 젊은이들에겐 저가 항공을 타고 와서 자신의 도시에서 할 수 없던 온갖 행동을 다 벌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동아시아의 청년들은 10여 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와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서 나름의 여행의 목적 수행을 위해 조용하게 지내면서, 잘 나가는 Szenekiez의 한 책방에 가서 유행한다는 토트백을 하나 사고, 장벽도 구경하고, 힙스터 카페라는 곳도 가고, 박물관도 가고, 밤에 클럽도 가고 하지만 결국 전통적인 여행 방식이나 거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약간의 힙스러움(?)을 경험하기 위한 수준의 여행을 보통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여행객들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이 방식이 나쁘다 좋다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전통적인 여행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여행객에게도 그리고 거주민에게도 피차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2025년 3월. 세월이 흘렀고, 동아시아의 관광객들도 거주민의 삶에 영향을 많이 주는 여행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도시에서 인근 중소도시를 놀러 가는 기차 티켓보다 저렴한 항공시간 2,3시간 내외의 저가 항공 비행기를 타면 올 수 있는 도시를 찾는 목적과 마음가짐은 전통적인 여행객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숙소를 잡지 않고 주말 내내 클럽에서 놀다가 피곤하면 노숙을 한다거나 공원에서 잔다거나 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서 술 마시고, 병을 깨고, 아무 곳에나 소변보고, 새벽에 소리 지르는 등 거주민들이 반 관광객 태도Anti-Touri-Attitude를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태도와 목적을 가진채 일탈을 위한 여행을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앞서 언급한 "자신의 도시에서 할 수 없던" 그리고 "일탈의 위한 여행"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싶다.
1. 거주국 및 거주 도시의 규칙과 사회적 감시에서 벗어나서,
2. 주머니 부담이 없는 적은 비용으로(심지어 유럽 주요 대도시에서 왔다면 베를린에서의 여행/유흥비는 그 도시의 생활비보다 적다..),
3. 자유처럼 느껴지는 일탈과 방종의 기회를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가난하지만 어쩌고 도시를 찾는 사람의 (무) 의식적인 목표가 아닌가 싶다. * 그런 관점에서 이전에 쓴 글 2016/06/05 - [도시건축/이야기] - 자본주의 시대의 도시의 자유, 스위스 조건 없는 기본 소득 국민투표를 앞두고
가난한 도시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본의 아니게 혹은 자리 잡은 사회 문화적 특징) 관용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가난한 도시는 공공 인력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공공서비스는 느리고 도시 질서는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 단적인 예시로는 도시의 더러움이다. (물론 인력이 갈려나가면서 청결함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공공 서비스의 부재에 익숙해진 거주민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정해진 규범과 공공 서비스에 의해 통제되는 도시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고, 그 사회적 합의는 분단 시절 버려졌던 도시인 베를린에 찾아온 사람들의 다양성과 개개인의 자유에 관한 관용에 더 가까웠다. 베를린에선 그들은 아나키스트였고, 좌파였고, 예술가였고, 이주민 등이었고, 이들은 기존의 국가와 정부의 질서와 통제에 반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베를린은 가장 화려했던 바이마르의 수도였고, 이후엔 분단의 역사로 인해 앞서 언급한 사람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들며 유럽의 그 어떤 도시보다 방종과 일탈이 허가되는 사회문화적인 자유와 그걸 노출시킬 수 있는 공간적 자유가 있었다. 1989년 통일 이후 독일 연방의 통일 수도로 수많은 정부 건물이 들어서던 공사현장의 베를린 한편에는 여전히 수많은 빈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자유가 있었다. (2025년 3월. 이제 진짜 거의 없어요...ㅠ)
이 블로그의 글이나 몇몇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베를린에 처음 와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던 장소들도 그런 방종이 용인되는 공간들이었다. 현재 그 공간은 대부분 건물이 지어졌거나, 사실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마지막 투쟁을 하고 있다. 건물에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들도 쫓겨나고 있는 상황이니, 빈 공터 등의 운명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베를린 전 시장이었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2003년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이후로, 시정부는 지난 15년간 도시의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세계적인 기업을, 투자가를, 예술가를 끌어들이려고 끊임없이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로서 이미지 마케팅을 하였다. 그 마케팅의 성과는 15년이 지난 지금 스타트업 기업과 각종 IT기업의 유치와 성장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베를린이라는 역사적인 슬로건이 생겨난 지 약 15년 만에 가난하지 않은 도시가 되었고, 또한, 베를린 만의 섹시함 역시 잃어가고 있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자유롭고, 반항적이고 쿨하고, 힙스러운 (최신 유행하는 쿨한 용어들을 다 집어넣는다...) 이미지로 도시 성장을 유도하려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기업은 도시의 변화를 보며 계산기 굴려가면서 눈치를 보다가 안전한 시기가 되었을 때 들어왔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우연한 역사문화적인 이유로 가지고 있던 매력만 내세우며, 사람들을 끌어 들었지만, 아무런 내실을 다지지 못한 도시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었다.
이제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인구 증가에 맞는 도시 인프라를 제공받지 못한 채로 끙끙 앓고 있다. 임대료가 싼 도시로 소문이 났지만, 정작 거주민들에겐 임대료가 비싸서 이사는커녕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길 바라야 하는 도시가 되었다. 놀이터는 언제나 더럽고, 공사 중이어서 부족하다. 유치원 역시 부족하고, 학교 건물은 너무나 낡았다. 대중교통이 늦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베를린 찾는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매번 스스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시위 등을 통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생존에 직결한 문제가 아니면, 가난한 도시였기 때문에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밀려오는 도시였기에 문제가 아니라 여기며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 해당 문장은 내용은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다음 기사 <왜 모두가 베를린을 짱이라고 생각할까 - 베를린 사람들만 빼고?>를 참조 인용.
그렇게 임대료는 매년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도시 인프라는 늘어나는 인구만큼 반대로 나날이 악화되었다. 그로 인해 거주민의 삶은 팍팍해지다 못해 심지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거나, 자진해서 더 나은 도시 인프라를 기대할 수 있는 다른 도시나 시 외곽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늘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이 베를린의 경제 성장의 이면에 담긴 도시의 모습이다. 거주민에겐 자유가 없지만, 관광객에겐 그리고 잠시 지나쳐가는 거주민들에겐 자유라는 환상을 살 기회가 주어지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이 점은 베를린 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수많은 관광 도시나 대도시가 겪고 있는 세계화 시대의 문제다.
"베를린의 삶은 계층이 없이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하고, 주민들은 그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동시에 스트레스 없이 살긴 또 어렵다."
과거엔 너무나 관용적이었던 도시에서 이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시 정부는 뒤늦게 그런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금 베를린의 거주민에겐 환영할 일이다.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관광 문화나 인구가 늘어나며 지켜지지 않는 기존 사회의 원칙이 무너지는 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정부에게서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구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시민 사회의 입장에서는 분명 관용도가 낮아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베를린의 명물(?) 중 하나인 맥주 자전거 Bierbike가 대표적인 예다. 관광객으로서 맥주 자전거를 타거나 구경하는 것은 정말 재미난 일이다. 하지만 맥주 자전거의 아주 느린 속도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운전자 등 도시 거주민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일까? 함부르크와 암스테르담은 오래전 이미 금지되었고, 베를린도 큰 여론의 변화가 없으면 머지않아 맥주 자전거 운행은 금지되거나 특정 구역에서만 운전이 가능하게 바뀔 것이다. 단체로 맥주를 마시면서 자전거를 운전한다? 느린 속도이고,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용인되어 왔고, 어쩌면 특색 있는 맥주 자전거의 운행 금지에 반대를 할 시민들도 적지 않겠지만, 수많은 변화를 거친 지금 여론도 등을 돌린 상황이다. 베를린의 관용 Berliner Toleranz이 변해가고 있다. (2025년 아직 살아있음...)
다행이게도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럼에도 여전히 베를린에는 수많은 자유와 일탈의 공간이 남아있다.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 다른 도시들보다 살기 좋다. 추운 겨울이 지속되면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도, 그리고 그 누구의 공지도 없이도, 사람들은 꽁꽁 언 호수와 운하 등으로 몰려와 스케이트를 타고, 아이스하키 등을 한다.
베를린은 여전히 자유를 살 수 있는 도시다. 한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유에도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도시는 분명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