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날레] 눈빛부터 촬영장소까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던 상비적여해(想飞的女孩)/ Girls on Wire

2025. 3. 1. 20:02리뷰

뜬금없이 라라랜드 리뷰(2025.03.01 - [리뷰] - [영화] 라라랜드)를 썼던 이유는 사실 얼마 전 베를리날레에서 본 영화 상비적여해 때문이었다. 베를린 살면서 그래도 베를리날레 자주 갔었는데, 마지막으로 베를리날레를 갔던 때가 바로 코로나 전염병이 유럽에서 확산되던 그 시기였다. 그 이후로 사회 활동은 커녕 외부 활동 자체를 안 하면서 "나는 집구석인이다." 찍으며 산지 어언 5년 차. 드디어 영화제에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영화를 보러 갔다. 사실 감기 유행철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컨디션이 썩 좋았던 때가 아니라서, 마스크를 쓰고 갈까 했는데, 대신 따뜻한 차를 챙겨갔다.

영화 시작 전까지

사람 없을 때 찍고 싶었는지만 입장 마감 3분 전이라 사람들이 다들 빠른 발걸음으로 Berliner Palast에 입장하고 있었고, 우연히 찍은 사진인데, 너무나 "베를린"의 영화제 느낌이 나는 사진이 되어버렸다.

중국 영화다 보니까 아시안 비중이 아주 높았고, 내 옆자리도 중국인들, 앞자리도 중국인들, 오른쪽 자리는 비어서 편안(?)하게 영화 감상이 가능했다. 챙겨 온 차가 너무 뜨거워서 내가 기침을 하며 주변인들의 영화 감상을 방해한 것은 비밀...

Vivian Qu / 文晏

아무튼 영화는 감독 Vivian Qu님이 그린 두 자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영화를 픽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올해 딱 한편 보게 된 베를리날레에서 이 영화가 내 마지막 픽으로 남겨진 이유는 베를리날레 공식 홈페이지 소개글에 있던 Sisterhood 태그, 자매애 때문.

영화 리뷰 글에서 깊게 이야기하긴 애매하니 간단히 적자면, 아무래도 남성으로 태어났고 + 연애하며 질투가 뭔지 모르는 스타일이었음에도 종종 일종의 질투심(?)을 느꼈던 경우가 애인과 오래된 애인 친구들 간의 자매애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런 감정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가지거나 만들 수 없는 그런 관계에 대한 일종의 부러움을 이런 영화나 문학 작품으로 간접 경험하고 싶었기에 이 영화를 끝까지 챙겨놨었다.

물론... 상비적여해는 사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네... 소개글 대충 읽고 혼자 망상했습니다. 근데 보통 내 마음에 드는 영화나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이런 식인 것 같다. 대충 읽고 선입견을 바탕으로 구성한 내 상상을 벗어나면, 내 선입견을 깨는 그것을 나는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시작

Vicky Chen Wenqi / 陈文淇

영화는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Wen Qi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채로 시작하는데,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관객을 씹어먹을 듯한 그의 눈빛 연기 때문에 영화는 도저히 재미가 없을 수 없게 시작한다. 대만 출생 배우시라니 또 대만에 대한 호감도 +200 상승. 이미 대만 호감도는 MAX이긴 하지만...

그래서 <라라랜드>는 왜?

라라랜드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비현실적인 극작품 (뮤지컬이 짬뽕돼서 더더욱)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던 생각도 똑같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비현실적인 극작품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배우들이 연기를 못해서도 아니고, 영화 배경이 어색해서도 아니고, 감독의 의도가 영화 내내 이어지며 보여준 연출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뷰를 읽고 나서 확신.) 

생과사가 달린 심각한 상황에서 틈만 나오면 던져지는 가벼운 개그 코드, 할리우드와 샹산 영화 촬영소라는 노골적인 무대 배경 그리고 (이제는 거의 기본 장치가 된) 시간대를 옮길 때마다 변경되는 프레임 비율, 모든 표현이 이것은 드라마의 무대이지 현실이 아니다고 이야기를 했고 유독 이 영화에서 그것이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관객 리액션과 같이 영화를 보게 돼서 더더욱 그런 요소가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백인들 그만 깝쳐ism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그리고 조금 젠체하는 영화제에 가니 느꼈던 것도 독일인들의 영화 리액션 문화. 독일 영화 관객들은 보통 영화를 보는 도중 감정 표현을 과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그중 보통 (한국) 사람들이 거슬려하는 것이 과하게 웃는 리액션. 나는 남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니, 극장에서 이들의 리액션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닌데, 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조금 거슬리곤 했다.

이들의 (웃음) 리액션이 거북한 이유는 "나는 유머 포인트를 가장 먼저 캐치해서 웃을 줄 아는 사람이다."를 드러내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이다. 특히 상비적여해는 주제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기본적인 분위기가 무거운 영화다. 그 안에 분명 (앞서 말했듯이 현실이 아니고 픽션 속의 이야기다를 일깨워주는 듯한) 크고 작은 유머코드가 들어가 있고, 그런 포인트에 웃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반응이다. 하지만 진짜 말도 안 되는 것에 웃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내가 영화를 보던 날 있었던 독일 총선 투표결과와 겹쳐지며 (저런 공감능력 결여인 사람이 극우 뽑았겠지?) 굉장히 신경이 쓰였던 기억이 난다. 총체적인 맥락과 상황을 바탕으로 웃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웃겨 보이면 웃는다.

영화는 비극적으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3월 8일 여성의 날에 개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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