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6. 02:00ㆍ리뷰
최근에 Tom's Diner라는 곡을 알게 되었다. 곡을 알게 된 계기가 좀 흥미로운 지점도 있고, 무작정 듣기만 할게 아니라 이렇게 기록을 남기면 내 취향을 파악하기에 더 좋을까 싶어서 쓰는 글이고, 음알못이니 무지몽매한 헛소리를 하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이 노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내 음악적 취향을 찾기 위한 구독 채널 중 하나였던 Book Club Radio (스스로 생각보다 큰 틀에서 여러 장르의 클럽 음악 좋아하는...)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들은 DJ Tinzo 믹싱 때문이었다. 이 영상을 시작하자마자...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IVE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나처럼 별로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면) 띠용할 수밖에 없는 이 Mix 영상의 첫 노래. 따따 따다따다 따따 따다 따다따다.
IVE의 ATTITUDE랑 너무나도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민희진과 뉴진스를 좋아하기 전 케이팝의 ㅋ도 신경 안 쓰던 시절 유일하게 나와 케이팝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며 나의 K정체성을 유지해 주던 아이브가 표절이라니. 안돼. 이럴 순 없어ㅠ 물론 아리튜드는 Tom's Diner 비트를 샘플링해서 사용한 노래였다고 헌다... 후... 음알못 심장마비 걸려 죽을 뻔. (참고로 아이브 최애곡은 IAM입니다.)
내가 일종의 케이팝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아이브의 최신곡에 들어간 노래가 이 유튜브 채널 DJ MIX에 우연히 나오고 나니, 이 노래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최근 Tom's Diner에 미친 듯이 빠져있는 상태였다. "하루에 5번 이상 의식적으로 노래만 감상"했던 노래가 이 노래 말고 있었나? 있을 수도 있는데, 딱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 BGM으로 노동요로 흘려들으며 하루에 5번도 넘게 틀어놓은 노래는 좀 있겠지만, 감상을 5번 이상하는 노래는 떠오르질 않는다.
Tom's Diner는 Suzzane Vega가 81년 작사작곡. 84년 원곡을 발매하였고, 90년 DNA라는 영국 그룹이 리믹스를 하며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이 노래가 8,90년에 만들어진 노래라? 도대체 90년대는 무엇인가.
Suzzane Vega의 노래에 대한 설명이 함께하는 원곡 영상.
DNA 리믹스 버전.
이 노래는 굉장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한창 mp3 데이터 포맷이 개발되던 시점, 압축 방식을 테스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노래가 바로 Suzanne Vega의 Tom's Diner였다고 한다. 테스팅당한 이력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mp3가 된 최초의 mp3 노래라는 이력도 있다. a.k.a. Mother of MP3. (해당 인터뷰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음: https://www.mp3-history.com/en/mp3_history_a_lookintothelab/suzanne_vega.html)
내가 즐겨 듣고 있는 이 노래의 리믹스 버전은 Frey의 2021년 발매곡인데, 앞서 말했듯 배경 음악이 아니라 하루에 몇 번씩 의식적으로 찾아서 집중해서 듣고 있는 노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뉴진스 노래도 그렇게 들어본 적이 없다... 한 3번 즈음 들으면 질림. (사실 이 노래도 곧 질릴지 몰라서 이 글 쓰는 것이기도 함.)
개인적으로 좀 흥미로운 변화는 이 노래를 알게 된 이후로 아이브 ATTITUDE에서 샘플링한 비트는 귀에 잘 안 들어오고, "아리튜드 (ATTITUDE)"라는 단어가 갑자기 꽂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리튜드 너무나 중독적이라서 한번 인식하면 빠져나올 수가 없... 아 이거 아이브 리뷰 아니지? 아무튼 지금 나는 아리튜드를 들으면 Frey의 Tom's Diner가 생각나고, Tom's Diner를 들으면 아이브의 아리튜드가 생각나는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에 빠졌는데, 이렇게 두 노래가 엮였는데 왜 나는 유독 Tom's diner 노래가 좋은 걸까? 왜!? WHY? WHY GOD WHY?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구구절절이 찾아내고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규정을 짓는 행위가 오히려 (조건 없이) 좋아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조건에 얽매이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보통 사람이나 연인에 주로 적용되는 편이다. 만약에 놀이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나 뚱뚱해져도 좋아할 거야? 내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해도 좋아할 거야? 사랑에 대해 조건 거는 것을 싫어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외에 이런 예술 작품에 대해서는 호불호의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왔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감히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취향 찾기 글에서는 내가 이 음악이라는 분야에 대해 1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이라는 기본 전제 조건을 깔고, 누가 보기엔 그딴 게 이유라고? 싶은 내용까지 최대한 솔직하게 좋아하는 이유를 적어보고자 한다.
1. 깔끔한 무성의. 무성의한 것처럼 들리지만 깔끔한 보컬이 좋다. 이건 사실 내가 그간 좋아하던 여성 아티스트 노래들과 어느 정도 같은 결을 지니고 있다. New Jeans의 New Jeans, Billie Eilish의 Bad Guy 같은 노래들. 물론 이 두 노래에 비해 Tom's Diner의 보컬은 훨씬 또박또박 들리는 편이긴 한데, 어떤 전반적인 태도의 느낌으로서 무성의한듯한 깔끔한 보컬이 좋다. 이런 스타일은 징징 울고 불고 소를 몰고 다니던 80,90년대 발라드식 보컬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대에 그 발라드를 즐겼고 이제는 일종의 탈발라드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보니 유독 이런 창법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과거를 부정하는 모더니스트가 되었다.)
2. 노래의 일관성. 내가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듣기 가장 힘들어했던 이유가 하나 있는데, 노래 안에 노래가 너무 많은 노래들이 많았기 때문이고, 이게 같은 노래 안에 있는 노래라는 느낌이 드는 하나의 작품으로 일관성 없는 노래들을 듣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잘못됐다 아니다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그건 내 명백하게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노래가 기승승승승기 정도만 돼도 전결이 없어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데, 최근 (케이팝...) 노래들은 2,3분 내외의 노래 속에 기전결결결기결결승승기승승내가짱이지 같은 노래가 너무 많았다. 뭐 인스타틱톡이니 챌린지니 15초 30초 같이 짧은 단위로 노래가 휙휙 바뀌는 것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걸 참을 수 있는 나의 마지노선은 아이브의 노래 정도였던 것 같다.
3. 3분짜리 노래. 너무 길면 싫고 너무 짧으면 싫고. 어쩌라고 싶지만 노래에 있어서 3분(수업 45분, 영화 90분 등등 좋아하는 단위들이 있는 편.)이라는 단위 너무 좋지 않나 항상 생각하는데, 이 노래가 딱 3분 정도 되는 노래다. 그리고 2번과도 연관되는 건데, 그 3분의 노래가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니 좋을 수밖에 없다.
4. 서사가 담긴 가사. 평생을 서사충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별일 없으면 서사충으로 살 건데, 그렇다고 막 대단한 서사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그냥 이야기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소소한 이야기에 더 환장하는 편이기도 하고. 엄청난 서사에 의미 부여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냥 무슨 이야기건 이야기가 있는 걸 좋아한다. (가사 별 내용 없는 뉴진스는 왜 좋아하냐고요? 그룹의 존재 자체가 서사라서요...) 원래 노래 들을 때 가사를 거의 신경 안 쓰는 편인데, (1번과 연관) 이 흥얼거리는 무성의한듯한 보컬의 깔끔한 노래를 듣다 보면 결국 가사가 들리더라. 정확히 말하면, 가사에는 꼭 관심 가질 필요는 없어라는 태도로 부르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 노래에 담긴 가사도 뭐 대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근데 소소하게 이런저런 해석이 가능한 짧은 이야기를 노래하는데, 너무 좋지 않나? (내가 서사충이 된 것도 8,90년대 구구절절 발라드 뮤비 영향이 크지 않나 싶음+소설 많이 읽었던 것도 클 거고.)
5. 원곡에 대한 존중. 이 노래 꽤 많이 리믹스가 되었고, 최근 바이럴을 탄 리믹스 중에는 어떤 남성 그룹이 부른 노래도 있는데, 진짜 듣기 싫어서 죽을 뻔했다. 뭐 그들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해석을 했는데,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뭔가 난 원곡을 뛰어넘겠어, 원곡이 생각 안 날 정도로 나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부르겠어가 너무 느껴져서 싫었다. 근데 Frey의 리믹스는 반대로, 원곡이 조금은 옛 스타일이니까, 난 좀 현대적으로 빠른 템포로 불러봐야지, 근데 내 노래 들으면 원곡도 듣고 싶을 거야 같은 태도가 느껴지는 리믹스여서 좋았다. DNA의 리믹스 버전도 같은 이유로 좋다. 실제로 Frey나 DNA의 리믹스 버전을 듣고 원곡을 찾아서 몇 번 듣기도 했고. 여전히 듣기 좋은 오래된 노래가 리믹스를 통해 현대적인 노래가 되는 것은 마치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건축물을(오래된 건축물이 섬세한 건축가를 만나 과거의 정체성도 유지하며 현대적인 문법이 입혀진 채로 새롭게 탄생한)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ex. David Chipperfield)
이유 많이 못 적을 줄 알았는데 5개나 적어서 뿌듯하다. 음알못이라 무슨 템포가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 못하고, 문화적 인간으로서 큰 틀에서 취향을 분석해 봤습니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좀 이거다! 싶은 이유는 일종의 모더니스트적인 접근으로 나의 기존의 음악적 유산 중 하나였던 봘라두...의 전통을 끊고, 그와 대척점에 있다고 느껴지는 음악인 Tom's Diner나 언급한 여러 음악을 요즘 좀 즐겨 듣고 있다는 것.
음악 말고는 나름 다른 취향이 어느 정도 확고한 편이고,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어떤 외적인 유형을 규정하지는 않지만 예술 작품의 논리와 근거에 대한 기준이라서, 음악 말고도 전반적으로 저런 기준에 속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이 글을 쓰면 확신하게 된 것은 음악은 잘 안 듣는 편이라 그 조건에 맞는 음악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음악 듣기에도 열심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좀 더 음악이라는 예술에 맞는 취향을 구체화하고 싶어진다.
제 취향에 맞는 음악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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