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시칠리아의 소도시, 프리치/ Prizzi, Sicily

2025. 3. 4. 18:00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이 풍경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고?

물론 시간이 부족하면 지나칠 생각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위성 지도로 얼핏 보기엔 그냥 흔한 시칠리아의 소도시 중 하나처럼 보였던 프리치는 그곳을 지나치던 도로변에서 보았을 때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도시의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운전을 하며 지나쳤던 대부분의 소도시들이 비슷한 풍경을 보여줬다. 지형에 소복이 앉아있는 자생적인 도시 문명의 흔적. 아무튼, 카스텔부오노가 좋긴 했지만, 어쨌든 작은 소도시라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시간도 넘쳐났다. 들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소도시니까... 아무 데나 주차를 하고 도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도심 안쪽으로 들어가려다가 도시 밖에서 진입하는 도로 폭 보고 아찔해서 골목 들어가려다가 바로 후진했다. 클럽 입구컷이 이 기분인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근처 공터에 주차하다가 수풀에 가려진 말뚝에 차가 긁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난 전액 보험을 들었지.

렌터카 여행에서 풀 커버되는 보험은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특히!!!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렌터카 여행 때는 풀 커버 되는 보험 꼭 들라고 100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나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잔 흠집부터 예상치 못한 자잘한 사고와 도심 운전 및 주차 시 필연적으로 생기는 스크래치 그리고 렌터카 직원의 각종 꼼수까지 풀 커버 아니면 정말 귀찮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산골 소도시들 좋아한다. 사실 그 안에 담긴 도시의 문법은 이탈리아가 아니더라도 서울의 여느 산골 동네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그 문법이다. 자생적인 산골 도시는 비슷한 문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도시의 발전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 도시의 특징 중 하나인 종교 건물과 그 앞에 형성되어 있는 크고 작은 광장을 우리네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이긴 하다. 하지만 지형을 존중하며 만들어진 도로의 형태와 자생적으로 짓고, 보수하고, 증축하고, 변경되며 만들어진 개별 건물들의 모습에서는 이탈리아라는 일종의 브랜드 이름과 해당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 자재 같은 외적인 요소의 차이를 제외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생적인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물론 그런 훈련과 생각을 꽤 해왔던 나에게도 "종 마저 귀엽네." 같은 말을 주절거리게 되는 것이 이탈리아 그리고 시칠리아의 소도시인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자동차마저도 귀여울 수 있는 나라. 이탈리아. 내가 키가 크지 않았다면 그리고 차를 싫어하지 않았다면, 나의 픽은 무조건 Fiat 500 시리즈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두 조건을 유지하더라도 혹여나 차를 사야만 할 일이 있다면, 이 차에 내 몸과 영혼 (?)을 구겨 넣고 머리 깨지고 엉덩이 깨지며 동네방네 운전을 하고 다닐 것이다. (이 글이 발행되기 하루 전 베를린에서 같은 모델로 검은색 파이트에 나와 비슷한 키와 덩치를 구겨 넣고 운전하는 사람을 보았다. 행복해 보였어.)

자연스러운 유선형 골목.

그리고 좀 더 인위적인 지그재그형 숏컷.

말이 1.3M 지... 나는 절대로 이 사이로 운전 못한다. 이것은 원주민과 외지인의 근본적인 차이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일상이냐 아니냐.

중간중간 보이는 도시의 풍경. 멀리서 군집을 이루고 있을 때보다 가까이서 보면 더 엉성하고 볼품없고 느슨해 보인다.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지(?)

또 다른 광장.

프리치 주변 풍경. 산도 물도 논인지 밭인 지 다 있다. 시칠리아에서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저런 내륙 호수에서 수영해 보는 건데. 아무런 정보도 친구도 없는 나에겐 홀로 도전하기엔 좀 무서운 곳이었다.

이런 계단 (인위적인 숏컷) 너무 좋지. 내가 신체적 약자가 되기 전까진...

이 도시의 중심 광장. 낮 시간이지만 마트랑 카페랑 다 열려있었던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 손짓 발짓으로 이것저것 사 먹었음.

이렇게 아예 생판 모르는 곳에 여행을 오면 내가 살아온 도시 환경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환경에서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을 해보곤 한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페북, 틱톡, 인스타가 나오기 전이라는 조건까지 추가해서 말이다.) 근데 아무런 레퍼런스나 근거가 없으니 상상조차 쉽게 되지 않는다.

 수백 장 찍었다.

도시 풍경 수백 장 찍었다. 마지막 사진의 아이도 이제 성년이 됐겠지? (또 아무말)

체팔루, 카스텔부오노 그리고 보너스로 프리치까지. 조금 무리해서 한 번에 돌아본 하루였다. 시칠리아 여행은 가족행사로 인해 예상보다 가고 싶은 곳은 그대로 많은데, 일정은 크게 줄어든 약간 비극적인 여행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촉박할 수밖에 없었고, 중간중간 여유를 찾기 위해 날린 일정이나 목적지도 많았다. 또 시칠리아를 갈 일이 있을까? 코로나 이후로 모든 여행 욕심이 사라졌는데, 시칠리아 도시의 사진과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흥미가 생기긴 한다. 아주 살짝. 아주 아주 살짝.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알게 된 건데. 2017년 토스카나 여행기도 업데이트를 거의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탈리아. 어쩔 수가 없다. 찍은 건 많고, 하고 싶은 말은 많았고, 여행을 다녀온 것부터 시간을 많이 투자한 건데, 돌아와서 사진을 선정하고,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고, 추가 리서치를 해서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벌려놓은 것은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밀린 숙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2025년 여행 전 2019년 2017년의 이탈리아 도시 풍경을 꼭 다 업로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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