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 3일 차 아침 산책인 척 풀코스 여행/ Palermo, Sicily

2025. 3. 9. 18:00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사실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보통 사람이 없는 아침 시간에 산책을 자주 하곤 한다. 이 산책의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나한테는 산책이긴 한데, 보통 여행 파트너에게는 풀코스 관광 동선이라는 점? 그래서 파트너가 있는 여행에서 혼자 조용히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오면 아침이나 간식을 사 오는 동선을 짜고, 이렇게 혼자 여행할 때 아예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돌아다닌다.

이날 아침 산책의 주제는 비교. 인싸가 되고 싶었던 팔레르모의 밤을 만들던 그 공간들을 아침에 다시 가보는 것이었다. 

근데 저 산 풍경 진짜 사기다. 너 재능 있어. 아침에 볼 때 진짜 재능충만함이 느껴지는 듯.

도시가 귀여우면, 그곳을 채우는 사물들도 자연스럽게 귀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인위적인 귀여움이 유행하는 한국이나 일본 사회의 귀여움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와 깊게 연관된다. 끔찍한 게 가득한데 귀여운 것 만들어서 보라고 막 강요하는 그런...

La Vucciria

어제 사람 가득했던 식당 광장. 사람 없어도 여전히 분위기는 괜찮아 보인다.

마약 할 것 같은 폐건물 밀집 구역.

아침에 생각보다 사진을 안 찍었네. 그때 봤던 분위기 좋던 골목과 광장은 그냥 조용한 동네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항구 쪽으로 가니 더러운 돈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고 재미없어서 하품 나오기 시작.

근처 성당에 가서 잠시 쉬었다.

그냥 느낌 좋았음. 초록색 차양 틀 색도 좋고, 건물 색도 좋고, 건물 층고차도 좋고, 비계도 좋고, 건물에 붙어있는 가로등도 좋고. 다 좋아.

저기 유리 파사드로 증축한 곳 안은 안 더울까?

골목 차양과 골목 가로 식당은 언제나 옳다.

나도 부지런했지만, 다들 부지런하다. 우리의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적 풍경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채워나간다. 물론 안부지런한 사람들도 같이 채우고.

팔레르모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유로팔레트 유행. 지금은 좀 덜한데, 끔찍한 시절이었다. 이거 돈 없는 대학생들이나 DIY로 가구 만들어야 할걸, 돈에 미친 카페랑 기업들도 저걸로 의자 만들고 테이블 만들고... 진짜 끔찍한 시절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대부분 사라진 듯.

이런 아파트 보이면 흥분을 멈출 수 없는 나는야 한국인 (사실 물 사러 마트 찾아다니다가 들림)

코로나 영향도 있고, 더 결정적인 이유나 다른 이유도 많지만, 석사 논문 쓸 때도 많이 느꼈던 부분인데, 도시를 공부하고 도시를 디자인하는 일로 오래 먹고살았지만 결국은 관두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결국 도시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직업 자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척하며 그럴싸한 말과 그림으로 먹고사는 느낌? 이런 일상의 디자인과 세월이 축적된 도시 골목을 볼 때마다 영원히 내가 왜 도시설계를 그만뒀는지 항상 기억 날 것 같다.

숙소 앞은 폴리치아 (경찰)이 상주하던 곳 높은 확률로 우범 지역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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