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2. 18:00ㆍ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6년 사이 "천공"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굉장히 이상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가 되었다. 젠장. 천공은 낭만적인 중세 판타지 느낌을 주는 단어였는데, 그 천공이 이 천공이랑 다른 뜻을 가졌겠지만(천공 사람의 이름 뜻은 모름...) 이미 망했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단어가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때로 돌아갈 순 없겠지.
아무튼 천공(天空) 넓은 하늘에 있는 듯한 도시인 에리체는 굉장히 독특한 지형 위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지도상 가운데 즈음 약간 삼각형 같은 모양의 주황색 점선 테두리가 에리체의 도시구역이다.) 차를 타고 올라올 때 그리고 에리체를 떠날 때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S자형 굽이치는 가파른 도로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중간에 멈춰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없었다.
숙소에 맨 처음 도착해서 창문을 여니 저 멀리 Riserva Naturale Orientata Monte Cofano가 보인다. 초기 일정대로였다면, 저곳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었을 텐데. (시칠리아 다시 와야 할 이유 +1) 이 숙소 직원이 노스 코리아인지 사우스 코리아인지 진지하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숙소 약간 근데 공산주의 건축의 느낌이 묘하게 들긴 했었다.
숙소가 뭐 많은 동네가 아니라, 이런 뷰가 나올 위치의 숙소는 뻔해서 그냥 공유한다. Villa San Giovanni (주소: Viale Nunzio Nasi, 12, 91016 Erice TP, Italy) 가격도 저렴했고, 풍경이 애초에 너무 좋아서 굳이 다른 숙소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었다.
숙소에서 짐 풀고 창가에 앉아 풍경 구경하다가 슬슬 에리체 도심을 구경하러 나왔다.
역시 도시가 귀여우니 종도 귀엽지? (사람은 귀여울 수는 없지만, 도시는 귀여울 수 있다.)
이런 골목의 느낌을 어디서 많이 받았을까 생각하니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가 바로 생각났다. 이 도시도 두 번이나 갔는데, 블로그에 글 하나 없다니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얼른 2019년 여행기를 다 쓰고, 2017년으로 넘어가야겠다. 아무튼 두 도시 모두 산턱에 요새처럼 자리 잡은 그런 도시들이랑 큰 특징을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골목의 단단한 비율(아마도 마차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었던 최소한의 폭 그리고 그에 2,3배 정도 되는 건물의 높이)과 그리고 투박한 외장재가 (여기에 비해 산 지미냐노는 근데 굉장히 돈을 많이 쓴...)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에리체에서는 건물 개별 타워는 못 본 것 같고, 성곽 타워들만 있었다.
종교 건물 앞 광장, 계단 그리고 갈림길. 재미난 공공 공간.
도시 구역 외곽으로 가면 주변 풍경이 훤히 펼쳐진다.
에리체 중심 광장. 솔직히 도시 명성에 비해 도시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쏘쏘 했다.
우수관. 귀여워 보인다고요? 맞아요. 최근에 우수관 하나 교체한 것 귀여움 포인트 +1. 역사가 축적된 흔적이 이런 사소한 곳에서까지 보이는 것이 오래된 도시들의 특징이다. (높은 확률로 그로 인해 삶은 불편할 수도 있을거다.)
에리체 도시 구조에서 좀 흥미로웠던 것은,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이는 성당(Chiesa Madre di Erice)이 도시 남서쪽 입구에 위치해 있고, 성곽 타워와 인접해 있었다는 것. 어떤 이유에서건 이렇게 굳이 도시 중심부가 아닌 성곽에 면한 외곽에 종교시설이 배치되었는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궁금하다. (이곳을 다시 놀러 가지 않는 이상 굳이 직접 찾아보진 않겠다는 뜻...)
이탈리아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와인을 살 때 보통 내가 여행했던 지역산 와인이 있나 항상 찾아보는 편인데, 그래서 뭔가 이탈리아의 랜드스케이프는 다른 나라에서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무리 피부가 타도 여름 시즌만큼은 동아시아인인 내가 백인이라는 생각을 자주가 아니라 항상 한다.
보통 좀비나 악당에게 쫓기다가 코너 돌아서 숨으려고 할 때 보이는 막다른 골목.
괜히 숨겠다고 코너에서 돌지 말고 평소에 달리기 연습 많이 해두고 최대한 직진으로 뛰세요. (아무말)
시칠리아니. 찾아보니 상하수도 관련 설비인가 보다. EAS: 시칠리아 수로 당국(Ente acquedotti siciliani)
도시 너머로 바다가 아니라 하늘만 보이는 천공의 도시 에리체.
남의 집 (유럽) 수국. 수국이라는 꽃은 유럽 여행할 때 그리고 독일 살면서 정말 많이 본 꽃이고 딱히 싫어할만한 이유가 없는 식물인데, 한국에서 도통 보기 힘든 식물이라고 생각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수국은 동아시아와 한국에서도 흔한 꽃이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긴 수국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색하거나 그러지 않은 것이... 그냥 내가 자연을 너무 멀리하거나 보고도 바로 잊은채로 살았나보다. (근데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더 멀리하면서 살 듯. 난 아직도 도시가 좋다.)
성벽에 오르지 마시오. 그러면 또 오르고 싶지. 관리라는 것이 없는 너무나도 느슨했던 시칠리아의 유적지들. 그 느슨함 속에서 어디까지 침범해도 되는지 해서는 안되는지 자신의 양심을 측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여행지, 시칠리아.
예사롭지 않은 주택. 모든 디테일이 예사롭지 않았다. 건축 잡지에 좀 나왔겠는걸.
도시 한 바퀴 쭉 돌고 나니 해가 슬슬 지기 시작했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나폴리에서 단 한 번도 음식 실패해 본 적 없고, 시칠리아 섬에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했던 곳이다. 막 못 먹을 맛은 아니었고 내가 먹은 음식은 두 종류이니 그 외 다른 메뉴는 맛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역 특산 음식을 시켰고+배고픈 상황이었음에도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슬픈 기억이 난다.
이 식당을 선택한 나의 패착은 너무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신뢰했다는 것 그리고 분위기 내며 광장에서 밥을 먹고 싶어 했다는 점. (그리고 2층에 있는 저 폰트가 마음에 들었... 이래서 외적인 것에 너무 휘둘려선 안된다.) 이곳이 시칠리아가 아니었다면 나는 좀 더 신중하게 광장에 면하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나 찾아갈 식당을 골목 안까지 들어가서 찾아냈을 것이고, 그곳에서 만족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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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광장 인근 Pasticceria Maria Grammatico에서 파는 모든 간식들이 맛있었다. 제발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골라서 드셔보세요. 정말 다 맛있었다. 침 나오겠네 정말. 왼쪽 사 먹고, 뒤돌아서 다시 들어가서 다른 종류 두 개 더 사 먹음. 날이 더운 시기에 안 갔으면 좀 더 다양하게 구매해서 운전하고 다니며 중간중간 먹었을 텐데. 찬 음료와 물을 잘 구비해 놓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던 날씨였다. (6월 말 - 7월 초).
숙소로 돌아가던 길. 아까 지나가던 관광객을 빼곤 텅 비어있던 광장에 사람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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