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4. 18:00ㆍ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에리체에서 트라파니는 굉장히 가깝다. 내 디카 줌 만으로도 도시의 형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시칠리아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제 지중해에 둘러싸인 시칠리아에 온 목적 중 하나를 지켜야 할 시간이 왔다. 지중해 바다 수영. (바다 수영 관련해서 다음 글 참조: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바다와 기억에 남는 해수욕 스팟)

방파제 건너편에서 수영을 했다. 사진에서 색이 다른 부분이 아마도 해안가에 고인 물이 아닌 지중해에서 오고 가는 해류가 아닐까 싶다. 지중해 어딘가에서 온 것 같은 너무나도 시원한 물에서 수영을 하니 더위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바다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는 도시인이기에 앞서 바다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가장 먼저 찾아볼 곳이 바닷가에 인접한 도시일 것이다.

해안가는 그래도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도시는 아직 한산했다.

트라파니 중심가로 인데, 아직 시에스타 시간이라 나 같은 관광객 말곤 텅텅 비어있다.

사실 텅 빈 도시 재미없는 부분도 있지만, 또 보통 도시들은 사람이 없을 때 그 자체의 매력도 있는 편이데... 음 트라파니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너무 직선적이고 깔끔한 도시들은 언제나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뭐 이를 설명할 다양한 이론과 분석이 있겠지만, 이제 블로그의 정체성을 무거운 도시 이론보다는 조금 무게감 내린 가벼운 헛소리에 중점을 맞출 예정이니 그에 맞춰 (자아성찰 겸) 설명하자면...

직선적인 도시는 비교적 예측이 가능하다. 사람도 좀 직선적이거나 겉으로 읽기 쉬운 사람이 있지 않는가? 내 스스로를 어느 정도 그런 유형의 사람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외적으로 단순하고, 행동이나 표현도 직선적이고, 안의 내 모습이 어떻건 겉으로 보기에 평균적인 느낌의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니 굳이 그런 류의 도시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뭔가 나와는 좀 다른, 겉으로 보이는 것이 특별하거나 다르거나 예측이 안되거나 내 선입견이나 예측과는 다른 류의 사람이나 도시. 그런 특징에 자연스럽게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베를린처럼.

아 근데 트라파니의 해변가는 너무 좋았다.

미쳤어.

약 1km에 달한다는 성벽. Mura di Tramontana.

성벽은 보행로로 활용되고 있고, 그곳에서 보는 풍경도 너무 좋다.

바다는 언제나 옳다. 저 멀리 산 위에 보이는 뾰족한 첨탑은 에리체에 있는 첨탑이다.

시칠리아가 덥다고? 그 와중에도 뛸 사람은 뛴다. 이 정도 집념이면 저 두 사람은 맨날 마주치지 않을까?


그렇게 평범한 게 싫을 때 즈음이면, 그냥 또 평범한 건물들에 꽂혀 이런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이다. 나도 스스로의 생각 방식을 종종 종잡을 수가 없네. 그래서 스스로를 분석하고 이유를 설명하며 스스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여길 봐도 바다, 저길 봐도 바다. 날 죽여줘.

이거 정말 너무 좋다는 표현으로 부족한 좋음이다. 뻗어있는 도로 위로 보이는 바다라니. 얼마 만에 보는 이런 풍경인가.

도로 끝에는 오순도순 바다를 즐기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온 길을 돌아보면 지루.

바다를 보자.

바다.

바다.

그러다가 또 평범한 건문들을 본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는 평생 알 수 없지만, 걸어둔 이불로, 커튼의 색깔로 종종 상상(아니고 망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지루한 도시였던 것은 사실이다.

도시 규모가 큰 편인데, 너무 대충 훑어봐서 그런 걸지도.

그리고 바다와 해안가가 너무 압도적으로 좋아서 상대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

트라파니! 바다 너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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