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7. 18:00ㆍ여행/'19 나폴리+시칠리아

마르살라는 뭔가 묘하게 독특했다. 우선 숙소부터 독특했다. 형제가 운영하던 AirBnB 류의 숙소였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이미 장사는 안 한 지 좀 된 것 같은 화려한 부티크 옷가게 1층에 있었고, 그곳의 휘황찬란한 계단실을 따라 올라가면 디자이너를 위한 사무실이 있었다. (왜 사진을 안 찍어놓고 기억을 더듬어 설명하고 있는걸까...) 그 사무실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큰 안방과 널찍한 화장실 그리고 복도까지 홀로 사용하는 구조였는데, 가격에 비해 너무 시설이나 위치나 환대나 모든 것이 좋았다. 사실 두 형제의 환대에 솔직히 조금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는데, 떠나는 날 얼음물 1.5리터까지 챙겨주는 것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얼음물은 사랑이다.)
아무튼 이 첫인상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내내 묘하게 따라다녔다. 뭔가 뭔가.. 묘하게 고급진 도시. 어쩌면 직전에 있었던 에리체의 거친 건물 분위기랑 대조돼서 그랬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위 사진 이야기 아님...)

과일들도 덥다.

휴양도시 느낌이 났다. 시칠리아는 당연히 휴양지 분위기 나는 곳이 많다. 리조트 타운도 굉장히 자주 보였고, 근데 구도심의 형태가 굳건한 도시들은 도시 자체가 휴양지 느낌을 주는 경우는 거의 못 봤는데 (물론, 내가 그런 도시를 일정에 넣지 않았음.) , 마르살라는 뭔가 묘하게 자꾸 휴양도시의 느낌을 풍겼다.

아무튼, 숙소에서 구도심으로 진입하는 구역에 있던 어시장. 독일어로 locker가 영어로 약간 chill 한 느낌인데, 굉장히 로커 했던 어시장. 팔릴래면 팔려라, 장사하시는 분들도 뭔가 약간 진짜 장사꾼 아니고, 그냥 할 일 없어서 땜빵 나온 복장과 태도였음. (물론 손질 시원시원하게 잘하시더라.)
그리고 골목에 있던 세월 좋은 locker 한 고양이들. 내가 M을 제외한 다른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든 말든,뭐 백인들 싫고, 인종차별 어쩌고 저쩌고 해도, 이렇게 이탈리아건 터키건, 고양이들이 그리고 도시의 여러 동물들이 태평하게 살고 있는 도시 환경에 있으면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큰 DSLR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내 주먹만한 디카를 사용하는데, 여행을 하면 종종 동네 (한량) 할아버지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진짜 이상하게도 사연 있어 보이는 할머니들은 내 손을 잡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신다. (이런 데서도 여남 차이...)
이런 예외적인 경험을 마주할 때마다 언어를 잘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수번을 갔지만, 아직도 할 줄 아는 것은 인사뿐이다. 그것도 갈 때마다 까먹어서 다시 외워야 한다. 예전 친구+동료들이 이탈리아어는 쓸모없다고 배우지 말랬는데, B2정도까진 배워도 좋지 않을까? 그냥 이런저런 언어 B2정도는 다 배워보고 싶다. (간만에 버킷리스트 생겼다!)
저 세분을 찍고 나니 자기도 찍어달라며 독사진을 요구하셨던 분. 이메일이라도 주고받을 걸. 이런 요청받을 때마다 항상 의아했던 것은 이들은 나에게 사진의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저들은 사진이라는 결과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쉽게 보기 힘든 아시안 여행객이 사진을 찍어주는 일종의 색다른 경험(?)을 원한 것이라는 것. 나는 이들을 위해 파 이스트에서 온 착한 동양인 여행객 역할을 수행해 주는 것이다.
우거진 나무 그리고 분수. 와인한잔 하고 싶구만.
성문이 좀 아담하다.
중노년남은 최대한 차려입고 공공장소에서 쉬는 나라.
손이 예뻤다. 이탈리아의 건물들에는 온갖 매력포인트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쉽게 눈에 띄이고 다양함을 갖춘 매력 포인트는 문에 달린 Knocker아닌가 싶다.
신기하지. 같은 도시에 있는 같은 거리의 집들인데 조금씩 다 다르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른데, 큰 틀에서는 또 같은 문법(차나 오토바이가 겨우 드나들만한 거리에 접한 좁은 문 - 그 안으로 길게 이어진 중정이자 복도 - 그 복도를 둘러싼 주택들)을 공유하고 있어서 유형학적으로 같지만, 또 자세히 보면 각자 나름의 다름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다르다.
직선은 모다? 모다? 보통 재미없다.
하지만 꽃은 모다? 아름답다.
역사 도시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의 켜가 쌓여 도시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형태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도시의 형태로서 남아있을 때도 있고, 이렇게 대놓고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될 때도 있다. 소수의 결정권자에의해 단 한 번의 선 긋기로 도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문화적인, 사회적인 수많은 이유로 계획되고, 건설되고, 변경되고, 파괴되고 그리고 또 새로운 운명이 부여되며 도시 공간의 재미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마르살라 성벽 위에서 본 바다.
성벽 공원. 성벽이 있던 자리는 공원이 되었고, 창 바로 앞에 성벽이 있었던 주택은 공원을 마주한 주택이 되었다. (95% 확률로 정확한 추측임.) 근데 이렇게 주택이 바로 맞붙은 공원은 대도시에선 쉽게 보기 어려운 공원 중 하나다. (보통 집 앞에 프라이버시를 위한 완충 공간이 있어야한다.) 생판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매일 집 앞 공원을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을 해보면 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작은 그래도 서로 어느 정도 아는 동네 주민이 공원을 이용하는 비율이 나 같은 신원은 특정할 수 없는 외부인보다 많아야 이 정도 부담스럽게 마주한 공공 공간과 개인의 공간 사이의 균형이 맞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긴 근데 진짜 로컬 공원이라고 느껴졌던 것이, 광장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 닫혀있어서 담을 넘어갔어야 했다. (로컬 청년들 따라했...) 아마도 외부인 출입이 덜한 쪽은 공원이 개방해 놓고, 외부인 출입이 잦은 광장 쪽은 의도적으로 닫아놓은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고.
모다?
직선에서 지루함을 덜어주는 요소가 몇 가지 있다. 그 지루해 보이는 길 끝에서 시선을 잡아주는 랜드마크. 그리고 직선 좌우로 만들어진 상업 시설이나 광장 같이 실내외로 뻗어나간 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간들. (아래 사진)
좋은 도시와 재미난 도시는 아무리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격자형 지루 지루 직선형 도시여도, 크고 작은 광장이 끊임없이 길을 따라 이어지며 직선거리라는 느낌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된다. 아쉽게도 시칠리아의 도시들에서 기억이 강하게 들 정도로의 재미를 느낀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너넨 바다 때문에 살았다.) 그런 로마 시대에 세워진 격자 도시임에도 재미난 도시들은 토스카나 지방에 가면 많다. 대표적으로 피렌체 그리고 루까.
그래도 시칠리아에선 뭔가 도시가 재미없다 싶으면 바로 바다를 찾으면 된다.
시. 원.
근데 여기 항구가 재미없네요.
사실 이거 마르살라 2일 차 여행인데, 1일 차는 다음 글로. (뭔가, 여행기에 대한 무게와 집착을 내려놓으니까 시간 순서 꼭 안 맞춰서 여행기 써도 되니까 좋다. 더불어 글 내용도 점점 내용이 붙는 느낌! 시간 순서 집착이 얼마나 심하냐면, 예전에는 진짜 시간 순서대로 글 안 쓰면 사기 치는 기분 들 정도였다. 지금 만드는 게임 영상도 플레이 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하이라이트 영상임에도 시간 순서대로 안 하면 사기 치는 것 같아서 시간 순서대로 편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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