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31. 05:25ㆍ리뷰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어릴 적 가장 처음 봤던 게이 영화가 제이크 질렌할과 히스 레저의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대중적으로 "이반"이 전혀 가시화되지 않던 시절, 유명한 영화라서 모두가 봤던 그리고 다들 스스로의 눈으로 본 것을 인식하길 거부했던 그 영화. 아무튼 그 이후 제이크 질렌할은 꽤 매력적인 배우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내 기억상 큰 논란은 없이 아직 잘 생존(?)하고 있는 "남"배우이고, 누나인 매기 질렌할 역시 유명한 배우. 애플 티비에 걸린 그의 얼굴을 보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무죄 추정은 내가 좋아하는 (법정+범죄) 스릴러 장르였다.
간단히 평을 하면 웰 메이드 시리즈였다. 큰 군더더기 없고, 연출 깔끔하고, 긴장감 충분하고, 반전도 있고. 이제는 그냥 장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이런 (반전) 스릴러물을 볼 때 나의 가장 큰 장점은 그냥 극 주인공에 몰입되는 게 아니라 그냥 극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1인칭 시점에서 상황을 인식하면서 반전에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주인공이 놀라는 그대로 놀랄 수 있다는 점인데... (예상을 1도 못함...) 오래간만에 진짜 화들짝 놀랄 정도의 반전이라서 재미가 있었다. (근데 추리 잘하는 사람들은 꽤 이른 시점에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은 크게 봤을 때 두 남성 인물을 대비되게 보여준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남성 (Jake Gyllenhaal) 그리고 미움받기 일색이고 어딘가 부족하고 열등감이 느껴지는 남성 (Peter Sarsgaard). 전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단독주택에 살고,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잘 나가는 검사였다. 그리고 후자는 고양이와 함께 (확실하진 않음) 공동주택에 살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검사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한 10년 전에나 제이크 질렌할의 역이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고, 어떤 외적인 매력이나 극에서 표출되는 열등감의 농도를 제외하면 피터 사스가드의 역도 지금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In the end, we only regret the chances we didn’t take, the relationships we were afraid to have, and the decisions we waited too long to make." - Lewis Carroll
극에 출연하는 주인공들은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 얽힌 것을 풀어내기 위해, 얽히지 않은 것을 엮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정이 떨어질 수준의 정보의 불균형 가운데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거짓의 허물로 감추어져 있고, 상황이 밝혀질 때마다 그 허물이 하나씩 벗겨지지만 그 조차도 진실인지 극이 끝날 때까지 알 수가 없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시대정신과 가치관이 많이 변했고, 과거에는 존중받거나 이상적으로 여겨지던 가치가 지금은 사회를 좀 먹는 구시대의 잔재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이크 질렌할의 마지막 대사 중 하나였던 "We will survive as a family, okay?"도 과거에 들었으면 어쩌면 뭉클했을지도 모르는 가족애처럼 느껴졌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의도한 메시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상 가족의 신화를 깨뜨려주는 대사였고, 이 시리즈 전반적으로 그런 의도가 느껴졌다. 도저히 스탑을 모르는... 고 밖에 모르는 러스티(제이크 질렌할)의 폭주는 그 개인이 아니라 그런 정상성에 대한 집착이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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