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나은 나를 향한 욕망은 스스로를 갉아먹을뿐.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5. 4. 21. 16:00리뷰

영화사에 길이 남아야할 장면...

*약간 스포 포함되어 있습니다.

"I can't stop."
하비는 오줌을 싼 손을 씻지도 않고 새우를 까서 소스를 묻혀가며 자신의 입에 집어넣는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다가(At 50, it stops.) 누군가 감히 그에게 질문을 하거나 토를 달 것을 생각지도 않았다는 듯이 엘리자베스의 질문에(What stops?)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 순간의 곤란함을 회피하기 위해 아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소변, 새우 그리고 소스가 버무려진 손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떠난다. 영화는 하비라는 인물 한 명과 그 주변의 온갖 랜덤 남성들을 통해 온갖 (특히, 외모 등에 있어서) 남성 권력의 개극혐 요소를 잘 표현했다.

이렇게 시작부터 이 영화는 시청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한국에서 꽤 성공한 유명한 영화임에도 여전히 독립영화에 가까운 서브스턴스는 생각보다 고어 영화였다. 나는 (별 근거 없이) 잔인한 고어 영화를 싫어하는 편이지만, 끝까지 몰입감 있게 볼 수밖에 없었다. 비위를 맞추지 않음에는 그리고 고어한 연출에 합당한 이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볼 수 있었던 것도 비교적 외모에 대한 압박이 적은 (제3자인) 남성이기 때문도 컸다.

"It changed my life."
서브스턴스는 사용자의 인생을 바꿔준다. 외모가 중요한 현실 사회에서 성형 수술이 분명 인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듯이 말이다. 물론 이 변화라는 측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니, 변화가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거였어?"라는 생각이 드는 충격적인 상황이 꾸준히 나온다.

외적인 부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외모 강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이제는 성형 취급도 받지 않는 쌍꺼풀 수술 같은 작은 변화부터, 이젠 그 말 자체가 어색하지도 않은 전신 성형과 지방 흡입까지. 최근에는 위고비니 뭐니 우리의 외모, 체형 그리고 패션을 단속하는 수많은 장치들이 적나라하게 소비되고, 당연시 여겨진다. 그 어느 때보다 외모 기준과 외모 강박의 결과물을 보며 놀라게 된다. 중안부 이슈, 20대 외모 같은 3,40대 여성 연예인들까지. (아주 종종 남성 연예인들도...)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이지만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서 삶을 강요당한다. 서브스턴스는 아주 적나라한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A better version of yourself."
영화는 표면적으로 더 나은 나. 정확히 말하자면 외적으로 더 나은 나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집착을 조명한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들이 외모 강박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집착이 커질수록, 욕망이 커질수록, 더 나은 나의 성공에 중독될수록, 점점 더 본래의 나 자신의 모습은 만족스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그걸 또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세상의 압박과 그걸 어떻게든 충족하려는 나는 결국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되며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수의 7일이 엘리자베스의 7일보다 더 가치 있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장면이었다. 어떤 혐오적인 표현. 노인을 향한. 아름답지 않은 사람을 향한. 노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향한 혐오. 마치 억만장자의 삶이 거지의 삶보다 더 값지다거나 하는 차별적인 사고방식.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그렇게 재단할 수 있을까? 고작 가장 노골적인 외형을 가지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이른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향한 (외모+나이) 혐오적인 차별에 분노한 피분수 쇼로 모든 것을 끝장내버린다. 마지막까지 이르는 장면들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일부 블랙 코미디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너무나도 철저히 현실의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엔딩이었다. 왜 트위터에서 열풍이었는지 알 수 있는(긍정)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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