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섯째 아이

2025. 4. 28. 16:00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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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행복해지려 했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다섯째 아이는 20세기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이를 낳는 삶의 리스크에 대한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꽤나)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상황을 그리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시작하며 운명처럼 서로를 기다렸던 한쌍의 커플은 아이를 하나, 둘, 셋 낳기 시작한다. 물론 아내인 해리엇이. 그들은 자녀가 가득한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고, 주변의 만류와 걱정에도 계속해서 자식을 늘려나가고, 매 크리스마스마다 늘어난 그들의 식구와 그만큼 늘어난 듯한 행복감을 자랑하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아기 제조소(책에 나온 표현)"에서 누구보다 해리엇은 지쳐가고 있었다. 몇번째 아이였을까. 아마도 소설의 제목처럼 다섯째 아이였겠지. 그는 절규한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 앞에서 남편 데이비드는 물정 모르는 소리만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표면적인 의미를 생각해보자면, 그만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025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 아이를 키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노 키즈의 시대. 애를 낳지 않고, 애를 환영하지도 않는 시대. "해리엇은 왜 자기가 항상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벤이 태어난 이후 항상 그랬지 (...) 나는 불행을 겪었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야." 

아이를 계속 낳고싶어하는 주인공 부부에게 아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둘은 마치 모든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그것을 놓쳐버릴 거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구나." 사회는 우리에게 정해진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경고를 하고, 협박과 저주를 하고, 때로는 위협을 한다. 내 윗세대만 해도, 개인 경험 내에서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가족 모임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사회적으로는 일종의 루저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여전히 개인의 삶과 비혼의 삶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좋지는 않지만, 결혼한 사람이 공공연히 비혼의 삶을 부러워하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조금씩 삶의 방식은 변하고 있다. 기혼 비혼 뭐가 옳고 나쁘다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와 탄압에서 인식과 포용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정상과 이상에 대한 집착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영역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지만 사회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공고한 정상성과 이상향에 대해. 1988년의 소설이지만 2010년대의 소설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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