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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이지만 아쉽진 않은 에리체에서 아침 산책/ Erice, Sicily
아니야, 나쁜 말 듣지 마. 에리체, 너는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야. 다만 나는 대도시인이고, 너는 소도시 중에서도 소도시일 뿐이야.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지만 사실 유럽의 소도시(사실상 동네 수준)를 여행할 땐 어떤 감정이입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하루 이상 머무는 것이 오히려 도시의 매력이 반감되는 독이 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그냥 가볍게 휴양 느낌으로 왔을 때는 다르다. 근데 뭔가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 지역 사람들에 이입을 하는 스타일이라면, 역설적으로 소도시는 짧은 기간만 머무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에리체가 딱 그런 도시였다. 몇 시간이면 동네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는, 그래서 하루 이상 지내기엔 애매한 도시 아닌 도시.어제는 보이지 않던 물통이 보였다.후. 물론 주변..
2025.03.13 -
천공의 도시 에리체 저녁 산책(그 천공 아님) / Erice, Sicily
6년 사이 "천공"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굉장히 이상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가 되었다. 젠장. 천공은 낭만적인 중세 판타지 느낌을 주는 단어였는데, 그 천공이 이 천공이랑 다른 뜻을 가졌겠지만(천공 사람의 이름 뜻은 모름...) 이미 망했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단어가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때로 돌아갈 순 없겠지.아무튼 천공(天空) 넓은 하늘에 있는 듯한 도시인 에리체는 굉장히 독특한 지형 위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지도상 가운데 즈음 약간 삼각형 같은 모양의 주황색 점선 테두리가 에리체의 도시구역이다.) 차를 타고 올라올 때 그리고 에리체를 떠날 때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S자형 굽이치는 가파른 도로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중간에 멈춰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
2025.03.12 -
팔레르모에서 4일 차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Palermo, Sicily
이래저래 보고 싶었던 도시 공간을 다 봤고, 팔레르모에서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은 아껴두고 있었던 팔레르모 성당(Cattedrale di Palermo)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당으로 직진했다.디테일들 너무 마음에 들고, 카펫으로 만들어서 집에 걸고 싶다(?)도시건축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도시풍경과 건축물 구경하는 것인데. 사실 아는 것이 많지 않으면 막 엄청 재미있는 것은 또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서 뭐 일반인들에겐 아는 척하며 일반론적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지만, 도시역사적인 맥락에서 좋은 정보를 높은 곳에서 본다고 해서 바로 알아내는 것이 또 쉬운 것은 아니니까. 이럴 땐 전문가의 자존심 내려놓고 그냥 입 닫고 빵이나 먹으면 된다. 눈뜨고 풍경이나..
2025.03.11 -
팔레르모 3일 차 착잡한 밤 산책: 지중해 난민 이야기 / Palermo, Sicily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선택했는지 뭔 시위냐고 물어봤는데 설명을 정확히 못해주셨다.더 물어보는 것은 귀찮으니, 여기저기 보이는 구호를 번역했다. 이렇게 인간과의 사소한 교류는 또 물건너 간다. 지중해에서 (사실상) 살해되고 있는 난민을 위한 시위였다. (이탈리아어 단어로 번역전에 이미 이해한 내용인데, 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또 난민 반대 시위일 수도 있으니. 구글 번역의 힘을 빌려서 안심을 하였다.)유럽에서 살면서 수많은 난민 이슈를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했었다. 베를린도 그 중심에 있었고, 그간 다녔던 여행지에서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했던 2015년 난민들이 기차를 타고 올 때 빈 시민들이 그들을 격렬히 환영해 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중해변 도시는 어디..
2025.03.10 -
팔레르모 3일 차 아침 산책인 척 풀코스 여행/ Palermo, Sicily
사실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보통 사람이 없는 아침 시간에 산책을 자주 하곤 한다. 이 산책의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나한테는 산책이긴 한데, 보통 여행 파트너에게는 풀코스 관광 동선이라는 점? 그래서 파트너가 있는 여행에서 혼자 조용히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오면 아침이나 간식을 사 오는 동선을 짜고, 이렇게 혼자 여행할 때 아예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돌아다닌다.이날 아침 산책의 주제는 비교. 인싸가 되고 싶었던 팔레르모의 밤을 만들던 그 공간들을 아침에 다시 가보는 것이었다. 근데 저 산 풍경 진짜 사기다. 너 재능 있어. 아침에 볼 때 진짜 재능충만함이 느껴지는 듯.도시가 귀여우면, 그곳을 채우는 사물들도 자연스럽게 귀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인위적인 귀여움이..
2025.03.09 -
[영화] 날 이런 식으로 울린건 너가 처음이야,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았다. 사실 울지는 않았는데, 내가 좀 더 공감이나 감정이입 잘하는 타입의 사람이었으면 눈물 펑펑 터졌을 순간들이 많았다. 이민자를 다룬 그리고 그 이민자를 그리워하던 이를 다룬 굉장히 특수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국에서는 별 인기가 없었다는 이유가 단번에 납득이 되었다.1.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 단짝을 이민으로 인해 상실해 본 적이 있는가?내 초등학교 시절 단짝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가끔씩 한국에 돌아올 땐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때는 역이민을 와서 또 긴 기간 함께 추억을 쌓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남겨진 나와 돌아간 친구. 이민은 언제나 남겨진 사람과 떠나간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남겨진 이와 떠나간 이는 생각보다 서로를 ..
2025.03.09